세계의 지방은행을 가다-(3)이탈리아-춘추전국시대의 지방은행

입력 2005-01-15 09:12:56

춘추전국시대의 이탈리아 지방은행, 지방 거점으로 살아남는다

최근 10년간 민영화, 지역별 규제 완화 등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이탈리아 은행들은 '은행도 이윤을 내는 기업'이라는 의식이 더 강해졌고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 대처하려는 움직임도 치열해졌다.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아직 국제화 정도가 부족하고 은행 수가 과도하며 영세 소규모 은행이 많아 은행 간 합병이 용광로 안에서 녹는 철처럼 뜨겁게 진행 중이다.

지방은행들은 지역별 규제 완화에 힘입어 세를 늘리려는 움직임이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가들처럼 활발하며 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각 지방에 뿌리박은 지방은행들은 지역의 강점을 살려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비첸자은행(Banca Popolare di Vicenza)=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비첸자은행은 1866년 설립된 뒤 이 지역에서만 영업을 하다 10여 년 전 대형화 바람을 타고 중부의 까리쁘라또은행(Banca Cariprato)과 남부 시실리의 누오바은행(Banca Nuova)을 합병했다.

까리쁘라또은행과 누오바은행은 비첸자 지주그룹 소유가 되었지만 직원과 점포, 상호는 그대로 두고 영업하고 있다.

현지 주민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기 위한 '현지화 유지 전략'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시실리 지역은 기업이 적은 반면 개인 부호들은 많이 있기 때문에 비첸자은행은 남부 부호들의 자금을 유치, 북동부 지역 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비첸자은행그룹은 이로 인해 북부에 331개 지점, 중부에 60개 지점, 남부에 62개 지점을 둔, 이탈리아에서 6번째로 큰 은행이자 전국에서 자산 규모 18번째의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파브리지아 잠보닌 비첸자은행 국제담당 부장은 "외부로 확장해 나가지만 지역을 중요시해 지역 사회 기여를 위한 문화·스포츠 후원에 힘쓰고 있다"라며 "이탈리아의 인기 스포츠인 축구와 사이클클럽 등을 후원하고 건축, 미술 전시회 지원에도 비중을 두고 있는데 특히 이 지역 출신의 뛰어난 건축가 팔라디오를 기리는 사업에도 적극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마르체은행(Banca delle Marche)=이탈리아 중동부 마르체주(州)의 마르체은행은 마르체주의 3개 저축은행이 합병해 1994년 출범했다.

지역기업들의 자금 대출 수요가 많아진 반면 은행들의 수신이 늘지 않자 자금 규모를 늘리기 위해 합병하게 됐다.

어쩔 수 없이 합병을 받아들이게 된 게 아니라 마르체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은행도 발전하려는 의미에서 합병한 것이라고 은행 측은 설명한다.

합병 이후 늘어나는 자금 대출 수요에 따라가기 위해 스페인, 프랑스 등지로부터 자금을 들여오기도 했다.

비첸자은행이 북동부의 주 권역을 벗어나 남부와 중부까지 권역을 크게 확대한 반면 마르체은행은 마르체주 내에서 합병을 이뤄 덩치를 키웠다.

마르체은행은 총자산 90억 유로(12조6천억 원), 240개 지점, 2천500여 직원, 당기순익 3천500만 유로(490억 원)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특히 주주의 33%인 3만여 명이 개인 소액주주로 구성돼 있어 주민이 고객이자 주주이다

마르체은행은 현재 65%의 이자수익과 35%의 비이자수익으로 이뤄진 수익구조 중 비이자수익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고 있다.

예전보다 이자가 낮아져 이자수익보다는 다양한 상품 판매를 통해 비이자수익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

은행이 자금을 많이 갖고 있어야 거래 기업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기 때문에 풍부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44만 고객 중 8만8천 명이 기업고객이며 대기업 0.11%, 중기업 4%, 소기업 96%로 소규모 기업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까리제은행(Banca Carige)=제노바의 까리제은행도 제노바에 한정돼 영업하다 90년대 이후 영업구역을 점차 확장했다.

제노바는 이탈리아 서북부에 있는 항구도시로 리구리아주에 속해 있는데 까리제은행은 토리노 등이 있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피아몬테주, 밀라노를 주도로 하고 스위스와 국경을 면한 롬바르디아주 등 전국 12개주로 영업 구역을 넓혔다.

리구리아주에 246개, 그 외 지역에 243개 등 489개의 점포를 갖고 있으며 4천700여 직원을 두고 164억 유로(23조 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당기 순익은 1억600만 유로(1천480억 원) 규모이며 주 영업구역인 리구리아주에서 수신 32%, 여신 32%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까리제은행은 은행, 금융, 보험, 연금 등 높은 수준의 통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경영목표를 세우고 있다.

영업구역을 확대하면서 초기에는 점포를 신설했으나 비용부담이 크자 방카 인테사, 우니 크레디토, 방카 디 로마 등 주로 대형은행들의 적자 점포를 매입하거나 시실리, 라치오 등의 작은 은행들을 합병해 규모를 키워왔다.

지역사회와의 밀접성을 이용, 지역 본거지 전략을 구사하는데 1대 1 고객 서비스가 뛰어나 경쟁력이 강하며 43%의 지분을 지니고 있는 대주주가 각종 전시회, 휴식공간 마련, 장학금 지원 등 지역 공헌사업을 벌이고 있다.

△밀라노은행(Banca Popolare di Milano)=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의 주도이자 수도 로마에 이은 제2의 도시이면서 '경제수도'로 불리는 밀라노시의 밀라노은행은 대도시 지방은행으로 규모 확장과 함께 내실 있는 성장을 꾀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1865년 설립됐으며 703개의 점포에 총자산 규모 249억 유로(약 34조 원), 당기순이익 3천600억 원, 135만 개인고객, 1만4천750개의 기업고객을 둔 이탈리아 10위권의 은행이다.

밀라노은행은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과 업무를 효율화, 수익성을 높이고 고객서비스도 향상시켜 왔다.

점포를 가격이 싼 곳으로 옮겨 경비를 절감하고 비업무용 자산을 효율화하고 조직구조도 슬림화시키는 한편 남부지역 은행들을 합병, 지점망을 늘리는 데에도 힘썼다.

까리제은행이나 비첸자은행이 역외 지역 점포에 자율적 경영을 맡기는 것과 달리 밀라노은행은 역외 지점으로부터 들어온 자금을 일단 본부로 모아 지역 사정에 따라 자금을 고르게 지원한다

부자 고객을 우대하고 그렇지 않은 고객은 차별화하는 형태는 국내와 비슷해 25만 유로 이상의 자금을 예치한 2천~3천 명의 고객에 대해서는 프라이빗뱅킹 전문가들이 부동산을 포함,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입출금식 저액 예금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알레산드로 푸가 밀라노은행 국제담당 부장은 "그렇다고 소액고객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소중히 여긴다"라며 "밀라노은행은 원래 서민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은행이었으나 10년 전부터 부자고객들을 따로 관리할 필요성을 느꼈고 2002년부터 전문 점포를 두기 시작했다.

프라이빗뱅킹 전문 인력 중 특별한 교육이 필요할 경우 지역의 상업대학과 협력, 연수를 받게 하고 인터넷교육을 한다"라고 말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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