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헌혈을 못하게 된다니 무척 아쉽네요."
14일 대구시 중구 '중앙헌혈의 집'에서 전태웅(65·경산시 진량읍)씨는 112번째 헌혈을 한 뒤 간호사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헌혈 정년식'이라 이름 붙인 생소한(?) 행사는 전씨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100회 이상 헌혈한 사람들의 모임인 '모두 사랑 헌혈봉사회' 회원 10여 명과 서용희 대구적십자혈액원장이 참석해 전씨에게 박수를 보냈다.
혈액관리법상 헌혈할 수 있는 연령이 만 65세까지로 돼 있어 15일이 생일인 전씨는 이날 생애 마지막 헌혈을 했다.
전씨는 "헌혈과 생일잔치를 겸한 셈"이라고 웃으면서도 "요즘 헌혈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나도 어쩔 수 없이 못하게 돼 안타깝다"고 했다.
함경남도가 고향으로 1943년 가족과 함께 남하한 전씨는 고등학생이던 1957년부터 헌혈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봉사의 의미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헌혈이었다.
"집안 형편이 워낙 어려워 매혈로 번 돈으로 학비를 대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피 팔아 공부한 셈이죠. 직장을 구한 뒤 진심으로 남을 도와주자는 생각에 계속 헌혈을 했습니다.
"
헌혈로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진 것은 1991년. 아들이 군에서 복막염이 악화돼 폐혈증으로 세상을 뜰 무렵이었다.
"누워있는 아들을 찾아 갔을 때 피가 필요한 아들 또래의 환자들을 보면서 헌혈을 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눈시울을 붉힌 그는 "헌혈기록이 전산화된 뒤 헤아린 횟수만 112번이지 그 이전까지 합치면 230여 회는 될 것"이라고 했다.
전씨는 보름에 한 번꼴로 혈소판, 혈장 등을 분리해 헌혈하는 성분헌혈을 하는데 한번에 500㏄의 피를 뽑는다.
그는 "헌혈에 인이 박인 탓인지 피를 안 빼면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면서 "돈으로는 못 도와줘도 몸으로라도 남을 도왔다는 만족감이 크고 무료로 정기검진을 받는 셈이니 일석이조"라며 예찬론을 폈다
"이제 헌혈을 할 수 없어 얼마 전에 장기기증자로 등록했습니다.
앞으로는 헌혈 가두캠페인과 시설 봉사에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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