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희는 왜 벗었을까

입력 2005-01-14 12:59:34

영화와 떠나는 추억 여행

한국영화를 말한다-1950년대 한국영화(한국영상자료원 엮음/이채 펴냄)

한국영화사 공부-1960~1979(한국영상자료원 편·이호인 외 지음/이채 펴냄)

요즘 우리나라 영화계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 IMF 이후 수년째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곳곳에서 '못살겠다'는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지만, 한국영화만큼은 '요즘만 같아라'고 목청을 높인다. 우리 영화의 매력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 또 과거의 한국영화는 어떠했을까. 지난 1919년 김도산의 무성영화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영화로 이름을 올린 뒤 80여 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요즘을 한국영화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해설서가 출간됐다. 한국영상자료원(KOFA)이 한국영화사를 종합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만든 '한국영화를 말한다-1950년대 한국영화'와 '한국영화사 공부-1960~1979'가 잇따라 나온 것. 이 책들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우리 영화산업의 황금기와 몰락기를 한눈에 조명할 수 있게 한 귀중한 사료로 읽혀진다.

책에서는 1950년대 한국영화를 '매혹과 혼돈'이라는 두 단어로 압축해 표현한다. 소재와 생활방식의 이국성과 할리우드 대중적 영화문법을 체화한 형식적 자신감, 사회적 압박과 모순을 담아내는 서사기술들은 흥분, 영감 그리고 모호함을 함께 안겨준다는 것.

또 한국영화의 태동기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비록 그 이전에 나운규의 '아리랑'(1926) 등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우리 영화산업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것. 우리 정부가 1954년 국산영화에 대한 입장세를 전면 면세 조치한 것, 1959년 우수한 국산영화를 제작한 제작사에 외국영화 1편의 수입권을 주는 보상특혜제도 실시 등 한국영화 장려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선 점을 그 이유로 든다. 특히 '춘향전'(이규환·1955)과 '자유부인'(한형모·1956)의 흥행대박이 터지면서 신상옥, 홍성기, 유현목, 김기영, 정창화, 김수용 등 실력 있는 30여 명의 신인감독들이 대거 충무로라는 '꿈 공장'에 등장하며,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예고했다는 것. 1960년대라는 한국영화의 엘도라도는 이 시기부터 그 기초가 다져진 셈이다.

모두 합쳐 1천400여 편의 영화가 생산된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전성기이다. 당시의 원로영화인들은 "1960년대는 한국영화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던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영화는 지식이나 사회적 계급과는 무관하게 이 시기 대중문화 영역에서 가장 유력한 장르였다는 것.

서울의 할리우드로 불린 충무로는 활기가 넘쳤다. 이런 활기는 1969년 229편, 1970년엔 전무후무한 231편 등 한해 평균 100편 이상의 다산(多産) 시스템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증가한 영화 편수와 관객수 급증에 발맞추기 위해 극장 숫자 역시 느는 것은 당연할 터. 한 원로영화인은 "자고나면 극장 하나가 문을 열었을 정도"라고 회고한다. 동네 어귀마다 빼곡히 들어선 당시 개봉관, 재개봉관, 재재개봉관의 모습은 최근의 멀티플렉스라는 신개념 극장이 등장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스크린 숫자와 비견될 정도. 책에는 이 당시 영화는 거의 독점적인 대중오락 매체로 자리매김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 갈 것으로 믿었던 영화의 부귀영화는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규모로 보급된 TV라는 신 매체에 모든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당시 신문이나 잡지의 문화면에는 우리 영화산업의 쇠퇴를 우려하는 논의가 자주 등장했고, 우려는 곧 현실로 다가온다. 관객의 급감으로 1973년 23곳의 영화제작회사 중 20곳이 도산 위기에 처했으며, 1970년 231편이던 제작편수도 3년 만에 125편으로 줄어들게 된 것.

극장들은 한국영화 간판을 내리고 앞다퉈 외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나마 한국영화는 1967년부터 시행된 스크린쿼터제로 인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게 된다. 저자들은 1970년대 한국영화계 침체의 원인으로 첫째 텔레비전의 보급, 둘째 국민들의 오락성향과 형태가 다양해진 점을 들고, 마지막으로 영화 자체의 질 문제를 거론한다. 당시 한국영화를 '저질'로 폄훼하는 기존의 영화사 연구가 많이 등장한 배경이다. 아마도 등을 돌린 관객의 시선을 잡기 위한 가장 단초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욕망과 쾌락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결국, 한국영화는 배우들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고, 요즘 에로비디오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극장에 걸리게 된 것이다.

1950년에서 1979년까지 우리 영화산업을 연구·분석한 논문들을 실은 이 책은 다소 딱딱한 문체에 호흡이 긴 문장이 많아 영화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게 단점인 듯. 하지만 영화산업과 정책, 상영관의 변화와 관객문화, 기술사 등 5개 주제로 나눠 당시 한국영화의 전반을 한눈에 들어오도록 한 점은 귀중한 사료로서 이 책이 가진 매력이다. 특히 책에 수록된 200여 장의 풍부한 스틸과 포스터 사진은 독자로 하여금 과거로의 달콤한 추억여행을 떠나는 데 이정표가 되는 동시에 충실한 연구결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각적 즐거움도 선사한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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