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의심 받지 않으려면

입력 2005-01-13 13:58:58

'소비가 미덕'이라면서 일본 총리가 '제발 미국 제품을 사달라'고 외치던 TV 장면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조차 먹혀들지 않자 아예 현금 5천 엔을 국민들에게 나눠줘 소비를 진작시키려 했었다. 일본인들의 '근검절약' 습성 대로 저축고만 늘려놔 급기야 상품권을 바로 나눠준 게 엊그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일본이 이제 겨우 극복해냈다는 '잃어버린 10년'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때 너무 흥청망청했던 업보로 우리는 지금 그 일본의 전철을 더 혹독하게 밟아가고 있다. 좀처럼 빠져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서 정권 초기부터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매진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1년반 만에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두고 '변했다' '아니다'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일단 반가운 일이다.

국가 예산은 물론 연기금까지 동원, 올 상반기에 집중 투입해서라도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고 한다. 보혁(保革)'노사(勞使)'계층 간의 갈등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개혁은 일단 뒷전으로 미루고 경제부터 살리라"는 국민 여론을 적극 수렴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경제계 인사들과 함께 외국 순방 직후에 나온 언급인 데다 보수층과의 연계 역할을 해온 김우식 비서실장을 비롯한 우(右)편향 인사들의 건의가 주효했다는 설(說)까지 나오고 있다. 이른바 '보수'라 지칭되던 언론계 대표들과의 만남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배경에서 '대언론(對言論) 협력관계'라는 가히 파격적인 '온정론'까지 나온 게 아닌가도 싶다. 그의 지지층 입장에선 퍽 '섭섭한 변화'일지 모르지만 대통령으로선 너무도 당연한 입장을 왜 이제서야 취하는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어쨌든 그의 변화의 효과는 여론조사에서 당장 나타났다. 20%대의 지지도가 30%대로 오른 반면 '잘못한다'는 계층도 60%대에서 50%대로 낮아졌다. 이게 뭘 의미하는가. 대통령이 '틀린 국정' 운영을 이제 바로 하겠다고 하니까 긴가민가하면서도 "그래 맞아"라는 민심의 흐름이 아닌가. 또 민심의 소재를 확연히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당의 국회의원 과반 의석이 곧 깨질판국이고 그걸 만회 할 수 있는 재'보선이 오는 4월말쯤으로 예정돼 있다는 데 있다. 그것까지 노린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시한부 선언'이 아닌가 하는 게 바로 '긴가민가'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그런 추측도 무리가 아니다.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국가보안법은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 "경제가 그렇게 나쁜게 아닌데 일부 언론이 과장 보도 하는데 있다"고 해놓고 급선회하니까 "진정인가?"하는 의심은 논리적으로도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만약 이게 그야말로 '기우(杞憂)이자 '의심'이라고 자신한다면 우선 국가보안법은 국론 대로 '개정'선에서 끝내야 한다. 설사 남북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라 해도 지금으로선 경제 회복이 누구도 부인 못할 국가 명운이 걸린 명제가 아닌가.

두번째는 '충청도 올인'도 같은 맥락에서 뒤로 밀어 둬야 한다. 대선(大選)의 승패를 '충청표'가 판가름냈다는 건 두 번의 선거에서 증명이 됐었다. '재미 좀 봤다'고 토로했듯이 우선 정권 재창출용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 그 '표'를 의식한 야당도 덩달아 동의했지만 행정 자족(自足) 도시 운운(云云)은 크게 봐서 위헌(違憲)정신에 배치된다. 설사 지금 부지 매입에 들어간다고 해도 '완성'은 언제일지도 모르고 국가 재정도 그럴 여유가 없다.

또 그게 수도권 문제가 해결 될지도, 도시 기능의 효율성도 미지수이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여타 시도가 그만큼 차별 받으면서 '지방분권'균형발전'이라는 현정권의 국정 지표마저 결국 '입에 발린 소리'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개혁의 화두(話頭)를 일단 제기한 것만으로도 이젠 국민들도 그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다. 차기 정권을 누가 잡든 국가 개혁은 지속돼야하고 그 공(功)은 누가 뭐라든 '노무현 정권'의 몫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집권 5년 내에 그 모든 걸 하려니까 급해지고 갈등이 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이런 욕심을 접고 경제만 살려도 '노무현 정권'은 예상 외의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그 '결실'도 자연스럽게 따먹게 돼 있다. 이런 순리(順理)가 있는데 굳이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국민을 피곤하게 하면서 싸움판으로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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