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입력 2005-01-12 09:08:49

서치라이트처럼 쏟아지는 햇빛에 쫓겨다니다

그 햇빛에 강간당해 날개가 다 타버린 여자

아기를 가졌다고 아버지에게 잡아 뜯겨

한정없이 입술이 풀어진 여자

바위에 눌려 깊은 물 속에 처박힌

물새같이 가련한 여자

급기야는 도망가다 감옥에 갇혀 알을 낳은 여자

낳은 알을 아버지에게 빼앗기고 돼지우리에

그 알이 던져진 걸 봐야만 하는 여자

김혜순 '유화부인'에서

이 여자가 누구인가. 해모수에게 겁탈당하고, 아버지 하백에게서 쫓겨났으며, 감옥에 갇혀 주몽을 낳은 유화부인이다.

여자는 여자 속의 그녀를 보듯 유화부인을 본다.

그녀를 구해주는 상상을 한다.

서사 텍스트 속에 갇혀있는 그녀. 아직도 몸밖으로 한 번도 나와보지 못한 그 여자. '그녀의 내지르지 못한 비명이 엎어진 건가 붉은 하늘이 지자/ 그녀의 손톱이 후벼 파 놓은 상처인가/ 한밤중 쓰라린 초승달이 뜬다/ 나는 또 한 여자를 구해주는 상상을 한다' 처절한 제의(祭儀)를 보는 것 같은 시다.

언젠가 여자는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몸이 '詩하는'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가 오줌처럼 '마렵다'고도 했으며, 시는 '내 胎 안의 모성을 깨우고 출산하는 행위'라고 했다.

박정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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