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오늘도 그분이 다녀가셨다. 60대 남자 환자가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팔순 노모가 치매로 입원하면서부터다. 아들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바싹 오그라든 어머니는 누워만 계신 지 3년째다. 어젯밤에는 어여쁜 엄마가 고ソ탔?신고 달아나는 꿈을 꾸었다며 걱정하셨다. 아직도 엄마가 귀엽다는 은발의 노신사는 엄마가 오래오래 사시는 것이 소원이란다. 그에게 어머니는 어떤 흔적으로 남아있을까.

영화 'A.I.'를 보면서 모자 관계를 생각해본다. 인공지능의 로봇이 엄마 사랑을 찾아 떠도는 이야기지만, 한편 어머니의 존재가 로봇까지도 감동시켰다는 점에서,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유대 속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원이 고갈된 삭막한 미래의 지구. 생존 위협에 직면한 인간은 먹지 않고 배설하지 않으면서 집안일이나 말동무, 정원 가꾸기, 섹스 파트너 등 많은 역할을 해내는 로봇을 만든다. 인간의 욕망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자녀 노릇까지 하는 로봇을 만든다.

이렇게 탄생한 최초의 소년 로봇 데이빗은 실험적으로 모니카 부부에게 입양된다. 그들의 친아들은 중병으로 냉동 보관되어 있었다. 데이빗은 따뜻한 성품의 모니카에게 모성애를 느낀다. 그러나 인간 생활과 의사소통 방식에 익숙하지 못한 데이빗은 새엄마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모니카는 애착행동을 보이는 데이빗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지만, 그녀의 친아들이 병을 회복하게 되자, 쓸모없어진 데이빗은 숲속에 버려진다. 데이빗은 엄마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진짜 사람이 되면,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지." 동화 '피노키오'의 푸른 요정이 목각 인형 피노키오를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알고, 그 요정을 찾아 나선다. 데이빗의 힘겨운 여정은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 만리'의 주인공 마르코를 연상시킨다. 누구나 느껴 보았을 어머니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회상되는 영화다.

정신 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유형을 5가지로 분류하면서, 이 중 무조건적인 사랑을 모성애라고 하였다. 모성이란 어머니가 됨, 어머니 역할 등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는데, 심리학자 도이치는 모성을 어머니와 아이가 생리적, 사회적, 정서적으로 주고받는 모든 것을 내포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항상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면서도 구속하지 않고, 행복감을 느끼며, 어머니로부터 서서히 독립해나가도록 키울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한다. 어머니-자녀 간에 의사소통이나 역할에 심한 문제가 있으면, 양쪽 모두 심각한 증상이 발생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어머니-자녀 관계의 문제(Mother-Child Relational Problem)'라는 진단을 내린다. 아이의 바른 행동을 보면 그 어머니를 칭찬하게 되고, 잘못된 행동을 보면 어머니에게 책임을 돌린다. 이렇듯 자녀의 행동 뒤에는 항상 어머니가 그림자처럼 녹아져 있다. 모자관계에 대한 많은 이론들(대상관계이론, 애착이론, 사회학습이론, 인지이론 등)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아이의 신체와 정서 발달에는 건강한 어머니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에 주고받는 상처가 더 깊다. 이런 경우 관계 개선을 위한 상담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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