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빠가 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아빠는 가족을 포기하지 않는다.
혈육에 대한 뜨거운 의무감으로 다시 서는 아빠들을 만났다.
◇아빠는 쓰러지지 않는다
2004년 7월, 적자에 허덕이는 버스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정준화(51)씨는 16년간 잡은 운전대를 놓아야 했다.
9월엔 더 큰 위기가 찾아 왔다.
가까운 산을 찾았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심근경색이었다.
정씨는 119 구급차에 실려 경북대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았다.
겹으로 닥친 역경을 이겨내는 데는 미경(14·여), 동민(8) 남매가 힘을 줬다.
"내가 쓰러지면 누가 우리 아이들을…."
3년 전 다단계에 빠진 부인이 집을 떠난 후 남매는 풀이 죽어 있다.
정씨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병세가 호전되자마자 개인택시부터 구입했다.
하루라도 빨리 일을 시작해 아이들에게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정씨는 병원에서 2개월치 약을 한꺼번에 타 오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 16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새벽 3, 4시에 잠이 들어 아침 7시 기상, 아이들을 깨우고 학교에 보낸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엔 꼭 1, 2시간씩 집에 들러 남매에게 밥을 챙겨준다.
택시 부제로 이틀에 한 번씩 운전대를 놓지만 쉴 여유는 없다.
빨래는 물론 집안 청소까지 마치려면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한다.
매일 아침 출근길. 정씨는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걱정마라 얘들아, 아빠가 있잖아. 엄마 빈자리까지 내가 채울게."
정홍태(47)씨. 한때 잘 나가던 '주먹'이었다.
10여년간 수차례 푸른 수의를 입었다.
그런 그도 아빠가 되고 나서 달라졌다.
2000년 마지막 수감 생활을 마친 정씨는 이듬해 결혼했고, 2002년 딸을 낳았다.
그때부터 그는 주먹이 아닌 아빠가 되기로 결심했다.
곧바로 요리사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 24시간 손에서 칼을 놓지 않았다.
손가락마다 굳은 살이 배이고 칼에 베이기를 거듭한 끝에 2003년 한식, 양식에 이어 복어 조리사 자격증까지 단 한 번에 땄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삶은 쉽지 않았다.
경력이 없고 나이가 많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어렵게 마련한 2천만 원짜리 식당 전세는 경매로 넘어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서 고향인 경남 마산에 내려갔다.
아구찜 비법을 전수받았다.
지금 그는 조그만 식당을 알아보는 중이다.
"나에게 시집을 와서, 우리 공주를 낳아 줘서, 아직 한 번도 바가지를 긁지 않아서, 시집 식구들에게 너무 잘해 줘서,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는 모습이, 항상 웃는 모습이, 잠자는 모습마저도…." '참 아버지'로 거듭나기 위해 지난해 12월 대구아버지학교에 참가한 정씨가 아내에게 바친 '아내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다.
"여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을게. 우리 행복하게 잘 살자."
이명수(45·가명)씨는 신용불량자다.
정상적인 직장을 가질 수 없다.
목사였던 이씨는 1996년 6월 부인과 이혼하면서 그만뒀다.
'가정파괴범'이 하느님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외환위기 때 동생 보증을 잘못 서 전 재산을 날렸고 지금까지 신용불량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아빠 역할 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부끄럽고 괴로웠지만 공공근로, 일용직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다.
지금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목욕탕 카운터를 본다.
낮에는 노환에 당뇨를 앓고 있는 노모(66)를 모시고 있다.
이씨는 사춘기인 고1, 중1 두 딸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할 생각이다.
두 딸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입히고 먹이는 것도 벅차 그 흔한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 해 대구의 부자가정 모임에 참가했다.
같은 처지의 아빠들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기를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3, 4년 후엔 매달 50만 원씩 적금을 부을 겁니다.
내겐 지켜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요.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조그만 목욕탕을 차리는게 우리 가족의 꿈입니다.
"
◇좋은 아빠가 될게.
"아빠가 바로서야 가정이 바로 섭니다.
" 3일 오후 8시 가창 우록 대덕기도원에 '역전의 아빠들'이 모였다.
2005 신년회를 연 두란노아버지학교 운영 위원들이 그 주인공. 지금까지 2천여 명의 아빠들이 거쳐 간 아버지학교는 바로 이들 17명의 무료 봉사 활동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 모두 아버지 학교 출신입니다.
5주간의 짧은 교육이지만 아버지학교에 완전히 반해 버렸죠. 그래서 스스로 봉사 활동을 자원한 겁니다.
"
부인 손을 꼭 잡고 기도원에 도착한 양성화(54·철공일)씨는 아버지학교를 통해 이혼 직전의 가정을 회복했다고 했다.
매일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 포옹, 1대1 데이트신청, 아내와 자녀들에게 편지쓰기와 그들의 사랑스런 점 20가지 찾기 등 아버지학교의 5주 교육프로그램이 쌓이고 쌓인 작은 오해들을 푸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양씨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먼저 좋은 자식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버지학교의 첫번째 숙제는 아버지에게 편지쓰는 것. 내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진정한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교육 이념 때문이다.
이날 양씨 부부는 노환의 아버지(84)와 함께 왔다.
부부는 24시간 내내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양씨는 "자녀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본받기 마련"이라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내 자식에게 대물림한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사진: 정홍태씨는 조리복을 입고 새 삶을 시작했다. 그는 아빠가 되고 나서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요리사로 변신했다.
정우용기자(사진 위) 자식이 따라주는 물보다 따뜻한 것은 없다. 일터에서 큰딸 미경이와 아들 동민이를 만난 택시기사 정준화씨가 환하게 웃고있다.(사진 아래)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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