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여는 '전통 손낚시 어부'

입력 2005-01-10 11:41:21

구룡포 소선협회 오진윤 회장

"껍질이 마치 사포처럼 꺼끄리한 옹가자미(속칭 이시가리) 한 마리 잡으면 그날은 횡재한 날이지요. 맛이 좋은데다 양식이 되지 않는 옹가자미는 ㎏당 10만 원이 넘어요. 그러나 대부분 날들은 하루 열두 시간씩 파도와 싸우며 낚시로 자연산 우럭 돔 등을 잡아와도 쥐치보다 값을 덜 줘요. 워낙 양식이 흔하고, 소비자들도 알아주지 않으니까요."

◆구룡포에서 유일한 전통 손낚시 어부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에서 5t 미만의 작은 배를 가진 어부들로 구성된 소선협회 오진윤(55·구룡포어협 대의원) 회장은 구룡포에서 바늘이 다섯 개 달린 손낚시로 우럭 대구 문어 가자미 등을 잡는 유일한 어부이다. 전통 무공해 어부의 맥을 잇기 위해 최근 한 사람에게 손낚시를 이용한 고기잡이를 가르치고 있다.

어업 선진국인 일본에서는 대형 어선이나 그물을 이용한 대량어획보다 어부가 손으로 직접 낚는 전통어업을 굉장히 귀하게 여기고, 그렇게 낚시로 잡은 자연산 활어는 웰빙 트렌드에 따라 부르는 게 값이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날이 갈수록 수산업의 비중이 약화되는 데다가, 해양수산부의 연근해어업 구조조정도 마무리되지 않은 터라 전통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낚는 뱃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바다오염과 어자원 고갈이라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효율과 속도만 중시, 바다와 고기 그리고 어부가 공존할 수 있는 낚시어업에 대해서는 외면해 버렸다.

◆심해에서 낚은 고기, 자가발명한 침놓아 소생

보통 자망어업(그물)을 하는 어부들은 새벽 3시쯤 나가면 오전 9~10시쯤이면 일을 끝낸다. 그때부터 그물 등 어구를 손보고 다음날 출어를 준비한다. 그러나 더 먼 바다로 가는 오씨는 새벽 3시쯤 바다로 향하면 오후 서너 시에 돌아온다. 주로 우럭(조대불락) 대구 문어 등을 잡는다.

"깊은 바다에서 잡은 고기는 끌어올리면 수압 차이 때문에 대부분 배를 위로 하고 뒤집어져 몇 시간 안돼 죽습니다."

왜 배가 뒤집히며 죽을까? 수압 차로 부레 외에 물고기 몸에 공기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하면 공기를 빼내면서도 고기를 살릴까 수없이 고민을 했다.

"커다란 소(牛) 바늘로도 공기를 빼봤지만 안 됐어요."

결국 오씨는 속에 구멍이 뚫려서 공기가 빠져나올 수 있는 굵다란 '고기 침'을 독자적으로 개발해냈다. 이 침으로 배를 뒤집은 채 헐떡이는 고기의 공기를 빼내주면 희한하게 살아났다. 전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바닷고기 침 소생법'을 발명해낸 신지식인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못지않은 독창적인 경지이다.

◆하루에 문어 113마리까지 잡기도

"최근에는 도무지 고기가 없어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5남매 맏이로 동생들 뒷바라지하고, 아들 딸까지 공부시킨 오씨는 어자원이 급속히 감소해가는 현실이 답답하다. 한일어업협정으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바다는 좁아진 반면 잡는 수단은 날로 발전했고, 오염은 심해졌다.

"옛날에는 밥 지어놓고, 갯바위에만 나가도 금방 고기를 잡아와서 반찬을 했어요. 요즘은 갯바위 백화현상이 심해서 통 고기가 없어요."

한창 고기가 잘 잡힐 때 오씨는 하루에 문어 113마리, 우럭 150마리까지 잡았다.

"고기도 많이 잡혔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우럭 1마리가 2~3㎏ 정도 될 정도로 컸어요. 그러나 요즘은 1㎏ 미만짜리가 대부분이에요. 씨알이 줄었죠."

고기도 줄고, 뱃사람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구룡포 인구 반토막 나 1만3천 명

구룡포는 한때 인구가 2만5천 명을 넘긴 적도 있었으나 2005년 1월 8일 현재 1만3천40명이고, 어부들의 나이도 대부분 60세가 넘는다.

"자녀들이 막일을 하면 했지 어부는 하지 않겠다고 도시로 떠나지요."

어부들의 노령화와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일본은 마린시티 조성, 어부체험프로그램, 연근해관광사업조성 등으로 후계인력을 양성하고 도시인들의 발길을 포구로 끌어들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경북도 내에는 수산학과가 단 한곳도 없어 수산 전문인력 양성에도 소홀하고, 웰빙 트렌드에 맞춘 자연식 어업의 소중함도 외면하고 있다.

"갈매기떼들이 수족관의 빙어처럼 보일 정도로 저렇게 높이 날면 센바람이 분다는 얘기지요."

30여 년을 구룡포 앞바다를 지키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어부 오씨는 요즘 정치 얘기만 나오면 TV를 꺼버린다. 할머니들 얘기나 동남아 지진해일 피해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도 나지만 정치인들은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은 그만의 심정이 아니다.

◆뻥 뚫린 대구-포항 고속도로로 구룡포 찾길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를 타고 대구 소비자들이 죽도시장을 찾아 그곳 횟집 매상이 두 배로 뛰어오른 것처럼 구룡포에도 훈풍이 불까? 한때 포경선들이 들락거리던 어업전진기지로, 동해안 최고의 대게 오징어 위판장인 구룡포에는 오늘도 오징어(북방파제) 잡어 고동 문어 대게(건너편) 등이 위판된다. 통통배들이 갓 잡은 국산 고기를 제자리에서 속지 않고 살 수 있는 구룡포에는 겨울철 별미인 구룡포 과메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가르는 갈매기떼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포가 번성을 되찾는 그날, 오씨의 천연낚시도 빛을 보지 않을까.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 j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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