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예수

입력 2005-01-07 11:32:18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길희성 지음/현암사 펴냄

한국은 불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세계적인 종교가 막상막하의 세력으로 공존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이다. 따라서 종교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그만큼 화합을 위한 종교 간 대화의 노력이 더 절실하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유달리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하는 불안한 동거'를 해왔다. 그 둘의 접점을 찾아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피고 서로 배워야 할 점을 짚어본 책이 '보살예수'(현암사 펴냄)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학자인 서강대 길희성(61) 명예교수가 '불교와 그리스도교'란 제목으로 10회에 걸쳐 일요신학강좌에서 강의한 내용을 다듬어서 펴낸 것이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핵심 사상을 비교하면서 불교의 공사상과 그리스도교의 신관 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깊이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시키면서, 구원론의 시각으로 보살과 예수의 역할을 비교해 관심을 끈다.

지은이 길희성은 국내 종교 현실의 최전방에서 학문적'신학적'대중적으로 종교 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앞장선 종교학자이다. 그가 오랜 학문적'실존적 관심의 대상이었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을 모색하면서 지금까지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 공유해 보는 장으로 삼은 이 책은 두 종교의 심층적 만남을 위한 사유의 씨앗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모태신앙으로 하면서도, 대학생 시절부터 불교의 순수성과 초세간적 자유에 매료되어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한창 그리스도교의 은총사상에 사로잡혀 불교는 너무 어려운 자력 수행의 종교라고 여기던 신학생 시절, 미국 예일대학 불교강의에서 신란의 사상을 처음 접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불교의 세계가 넓고 깊다는 생각에 새삼 놀라면서 '자력 종교'대 '타력 종교'란 도식적 이해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면서 신란의 사상을 깊이 연구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신란의 정토사상은 불교의 주류라고 할 수가 없어 그 주류인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모색했다.

그 와중에 중세 가톨릭의 신비주의 수도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사상을 접했고,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가능성을 확인했던 것이다. 저자는 두 종교가 본질적으로 '죄악세상'과 '탐욕적 세간'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해 초월적 구원을 추구하고 개인과 사회를 향해 부단한 '영적 혁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깨달음, 자각, 각성을 중요시했다고 말한다. 현대 그리스도교도 어떤 하나님의 이해, 어떤 그리스도의 이해, 어떤 세계관과 인생관을 제시할지를 진지하게 묻고 답해야 하며 이를 위해 불교와의 진정한 만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길 교수는 자신이 기독교인이면서 '인도철학사' '지눌의 선사상' 등 불교연구를 해 온 학자다. 1987년 새길교회(개신교의 대표적인 초교파 평신도 교회)를 공동으로 창립한 이래 한국 교회의 거듭남에 앞장섰고, 가톨릭이 운영하는 서강대에서 불교학을 20년 간 강의했다.

'보살예수'는 지구촌에 거의 유례 없는 다종교국가로 유난히 종교신자가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종교 간 이해를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말했다. "제가 오랜 종교생활과 종교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얻은 결론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학이나 사상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