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우리 쌀 '품질경쟁'이 우선이다.

입력 2005-01-06 11:35:35

쌀 협상이 타결돼 협상결과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함에따라 수입 쌀의 규모가 앞으로 10년간 지금보다 2배나 늘고 6월부터 동네 슈퍼나 가게서 외국산 쌀이 시판될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 수 천년간 우리 손으로 지은 쌀을 먹어온 국민이나 이를 공급해 온 농민들로서는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부터 쌀 시장 개방(관세화)을 반대해온 농민단체들은 '최악의 협상'이라고 규정, 헌법소원과 국회비준 저지운동에 나서는 등 아우성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정부가 시한에 쫓겨 국회동의 절차 없이 협상결과를 발표한 것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행태"라며 "정권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때문에 주무장관도 바뀌었다.

농민단체들이 이처럼 강력 반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비록 수입 쌀 시판량이 전체 수입물량의 10%에서 30%까지 점차 늘려나간다고 하지만 시중 쌀 값에 큰 영향을 주고, 결국에는 우리 쌀 농사의 기반을 이 땅의 보리나 밀이 사라졌던 것처럼 붕괴시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첫 시판되는 쌀도 우리 쌀보다 10% 정도 값이 쌀 전망이기도 하다.

농민들의 아우성에 대해 정부는 내년부터 당장 관세화로 가는 것이 우리 경제에 유리한 측면이 없지도 않으나 관세화를 극력 반대하는 농민의 의사를 수용하고, 유예기간이나마 우리 쌀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희생양'으로 물러난 농림부장관도 "도하개발어젠다(DDA)협상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관세화유예를 한 뒤 협상결과를 보고 다시 판단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정부의 판단과 농민단체들의 생각이 확연히 갈라짐을 발견한다. 정부는 내년 말이 시한인 DDA협상 결과가 우리에게 유리할 지 불리할 지 모르고, WTO가 DDA협상 결과와는 관계없이 관세화나 관세화유예 판단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는 것이 마땅하고, 정부의 도리라는 입장이다. 반면 농민단체들은 DDA협상 과정을 지켜보며 쌀 협상을 해도 될 것을 정부가 지레 서두르는 바람에 의무수입 물량을 늘리고 시판을 허용하는 등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주장이다.

둘 중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DDA협상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년 말까지 타결되리란 보장마저 없는 상황에선 양쪽 입장이나 주장이 다 옳다고 볼 수 있느냐 분명한 것은 우리가 WTO체제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WTO체제가 무엇인가. 비교우위 경쟁을 통해 자유무역을 확대함으로써 세계를 더욱 윤택하게 한다는 것이 아닌가. 선진 강대국의 횡포가 개입되는 등 WTO의 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 체제서 탈퇴하지 않는 한 우리의 쌀 시장은 언젠가는 완전 개방해야 한다. 정부와 농민단체의 입장이나 주장도 시간상 선후의 차이가 있을 뿐 WTO체제의 거센 흐름엔 무력하다.

우리의 쌀 농업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적절한 정책으로 좋은 쌀을 생산해, 소비자들이 우리 쌀을 찾도록 하는 길 밖에 없다.

정부는 우선 '품질경쟁' 정책을 과감히 확대해야 한다. 친환경 농업인증농가를 늘리고 친환경 농업직불금을 대폭 올려 농민들이 우리 입맛에 맞는 고품질 쌀을 생산토록 해 소비자들이 슈퍼나 가게에서 외국산 쌀에 눈길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지를 젊은 농민들에게 6㏊규모로 집중화시키는 '가격경쟁'은 농촌에 젊은 피를 수혈하고 얼마간 가격 격차를 줄일 수 있을 진 몰라도 외국산 쌀 값을 이겨낼 수는 없을 것이다.

브랜드 쌀에 대한 대책도 서두를 일이다. 농민들의 자구책으로 생겨난 '이름'얼굴 있는 쌀'은 현재 1천200여 개에 달하고 있으나 실제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인정받는 브랜드는 소수에 불과하다. 시'군이나 지역별로 재배품종을 3, 4개로 단순화하고 품종별로 구분 수매함으로써 신뢰를 높여야 한다.

도'농직거래 등 농산물 유통구조의 혁신과 함께 원산지 표시 감시나 단속도 엄격히 해 외국산 쌀의 국산둔갑 판매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 쇠고기는 이를 소홀히 했다가 소비자나 생산자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한우의 사육기반만 무너뜨리고 말았다.

쌀 협상 타결안이 국회 비준을 받든지 못받든지 우리는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정부 농민 국민 모두가 지금부터 황금들녘을 지켜내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우리 보다 먼저 쌀 시장을 개방한 일본이나 대만이 해냈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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