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영·홍기량씨
방수영(74'대구시 남구 대명9동)'홍기량(66)씨 부부는 새해가 즐겁다. 올해도 건강한 몸으로 다리를 혹사(?)시킬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어깨에 메는 커다란 가방과 등에 짊어지는 작은 배낭을 메고 편한 신발을 신으면 이들의 여행 준비는 끝난다. 백발을 휘날리며 나이에도 어울리지 않는 배낭 여행을 이 노부부는 지난 15년간 함께 다녔다.
"발로 돌아다니는 게 바로 여행 아닙니까. 그냥 패키지 여행을 따라 가 사진 찍고 돌아오면 뒤에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3년 여행하면 도사가 된다는데 이들 부부는 같이 여행 다닌 지 15년이 됐지만 옥신각신 싸우는 게 아직 도사가 못 된 모양이다.
"사실 나이 든 사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어다니려면 힘들지 않습니까. 지름길로 가면 될 것 같은데 돌아서 가고, 좀 더 찾아보면 값싼 숙소를 구할 수 있을 건데 비싼 데서 자고 만날 싸우죠." 손자가 "자주 싸우지 마세요" 하며 카드를 보낼 정도로 여행을 다니면서 싸우는 게 일이지만 이들 부부는 늘 함께 다닌다.
"아이를 데리고 간 건 딸이 대학 졸업 후 결혼하기 전에 한 달 남짓 유럽 10개국을 돌아다닌 게 전부입니다."
몇 년 전 며느리의 산후 조리를 돕기 위해 집에 아내를 남겨두고 혼자 떠났다는 방씨는 "너무 재미가 없어 여행 일정을 다 채우지 못하고 돌아왔다"며 웃음 짓는다.
미국, 캐나다, 유럽, 뉴질랜드, 호주, 이집트, 일본…. 직접 값싼 비행기표를 구하고 여행 일정을 잡는 이 부부는 "지진, 태풍 예보 시스템 등이 잘 돼 있는 일본, 호주 등지와 달리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여행 경비는 값싸도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안 갖춰져 있다"며 "이런 곳에서는 신변의 위협 때문에 한두 달씩 보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6개월 간 죽도록 일하고 6개월 간 여유있게 쉬며 여행을 다니는 특이한 삶을 꾸려온 지 어언 20년. 바로 4월부터 추석 때까지만 냉면 장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부산안면옥' 식당의 주인이다.
"좋은 원료와 숙달된 인원을 쓰려니 원가가 다른 집보다 높은 편인데 원가가 전체의 30%를 넘기지 않는 게 철칙입니다. 추운 겨울 냉면을 먹는 이북에서와 달리 이곳 사람들은 겨울철에는 냉면을 잘 안 찾아 여름과 겨울철의 매출액 차가 크니 세무당국과의 마찰도 우려돼 결단을 내렸지요."
방씨는 6개월 쉬는 동안에도 주방장에게는 일정 급료를 계속 준다고 했다. 냉면을 나르는 아주머니 등 6개월 간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도 8, 10년 이상 함께 일한 사람들이다.
'아마추어 여행가'를 자칭하는 방씨가 김삿갓처럼 배낭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15년 전 캐나다 목장 견학을 가게 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세계를 다니면서 배울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성경에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고 돼 있는데 사람도 한 곳에 오래 있으면 고루해지고 퇴보하게 됩니다."
이 부부는 "사람이 70세까지 산다면 여행을 다니는 건 70세 이후 덤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80, 90… 200년의 세월을 체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평양 출신으로 월남해 부산 등지에서 10년간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일하며 번역서를 출간하기도 했던 방씨. 1967년부터 대구에서 냉면집을 경영하며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그는 "영어교사를 계속 했으면 아마도 지금쯤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에도 과외가 성행해 새벽, 밤 할 것 없이 교사가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과외 지도를 해줘야 했는데 그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다.
"화제의 책 '다 털어먹고 죽어라(Die Broke)'의 내용처럼 재산을 물려줄 생각하면 자식들이 돈 때문에 싸우지만, 다 털어먹고 죽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삶을 즐기면서 살 수 있습니다."
방씨는 이 책의 '절대 은퇴하지 말라'는 주장처럼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 여름에는 밤 10시가 다 돼도록 밤 늦게까지 식당 일을 하며 겨울에 털어먹을 준비를 한다.
"체력이 안되면 식당 일이나 배낭여행이나 모두 힘든 일이지요." 그래서 방씨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이면 앞산으로 등산을 간다. 부인 홍씨는 운동 갔다 온 남편을 위해 집에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대신 집에 있는 운동기구로 체력 단련을 한다. 식당을 운영하지 않는 겨울에는 매일 오후 2시간 정도 부부가 함께 시장을 다니며 장도 보고 다리 힘을 올린다.
"미국에서 최고령 시장이 96세 할머니라고 합니다. 늙은이도 능력이 있으면 시장이 될 수 있는 사회풍조가 부럽습니다. 미국의 노인들은 독서를 많이 하고 자원봉사 등 사회 참여율이 높아 사회를 이끌어가는 밑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늙은이가 젊은이를 이끌려면 실력이 있어야 홀대받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이 부부는 "힘이 닿을 때까지 세계를 돌아다니며 우리가 고치고 배워나가야 할 점을 알리고 싶다"며 입을 모은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