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2005! 다시 일어섭시다-(2)갈비집 연 조병오씨
"다시 일어서야죠. 더 이상 주저앉을 곳도 없어요. 마지막 인생을 던졌습니다." 이달 경산시 농협 경산시지부 뒤편에 돼지갈비집을 다시 여는 조병오·석화연씨 부부. 조씨는 올 해 예순이다. 남들은 여생을 즐길 나이에 그는 인생의 출발선에 다시 섰다.
1일 조씨의 가게. 새해 벽두부터 연장 소리가 요란하다. "여보, 드라이버와 망치 좀 줘." 부부는 지난 한 달 밤낮없이 식당 오픈 준비를 했다. 부부가 직접 '두드리고 달고 칠했다'.
부부는 망해도 철저히 망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죄밖에 없는데…." 장갑을 벗고 기자와 마주한 조씨는 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옆에 앉은 부인도 안경 속 눈물을 훔쳤다. "울고나야 속이 덜 아파요. 한땐 돈도 많이 벌었는데… 한 번 넘어지니까 브레이크가 없더군요."
조씨의 고향은 부산이다. 1968년 공무원이 그의 첫 직업이었다. 막걸리 한 되가 15원일 때 월급으로 1만6천 원을 받았다. 74년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뒤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일본기업을 거쳐 77년 창원의 효성중공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당시 고졸 중퇴 학력으론 드물게 과장까지 올랐다. 조씨는 81년 직장을 그만뒀다. "학벌도 달리고, 안정된 미래가 필요했죠." 직장을 그만두기 2년 전에 부업으로 시작한 2평짜리 구멍가게가 재미있었다. 돈도 많이 벌어 81년엔 인근 15평짜리 가게로 옮겼고, 86년에는 창원 공단지역 노른자위에 50평짜리 가게를 매입했다.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져 가족끼리 놀러 한 번 못 갔습니다. 집에 갈 시간이 없어 창고에 아내와 함께 박스를 깔고 자도 즐거웠어요."
조씨는 공휴일도 없이 일만 한 슈퍼마켓 운영 10년 만에 창원에서 '현찰왕'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조씨의 성공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90년 슈퍼를 그만둔 이후 쓰라린 실패의 연속이었다. 실패를 몰랐던 그는 호텔사업을 꿈꿨고, 그 전초전으로 창원 도심에 8층짜리 오피스텔을 지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현찰이 많다는 소문이 퍼져 건설업자들이 너도나도 조씨를 유혹했다. 결국 조씨는 사기를 당했다. "땅과 건물은 온 데 간 데 없고, 수십억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렸죠.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90년 8월 무작정 연고도 없는 대구로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사업할 돈은 남아 있었어요."
목욕탕에 손을 댔다가 손해만 봤다. 93년 목욕탕도 정리하고 구미로 갔다. 이때부터 식당을 시작했다. 남은 돈을 모두 투자해 돼지갈비집을 열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엔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무일푼 신세가 됐다.
2002년 대구로 돌아왔다. 수성구 시지에 돼지갈비집을 다시 냈다.
밑바닥 경기는 또다시 그에게 처절한 패배를 안겼다. 집세는커녕 전세금까지 까먹었고 수억원의 빚은 갚을 길이 없었다.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있나 하고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부부는 현재 월세 10만 원짜리에 산다.
"몇 달을 두문불출했죠. 어느 날 아내가 나의 손을 꼭 잡으며 한 번만 더 고생하자고 해 다시 용기가 생기더군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재기를 위해 경북대 외식산업 최고경영자 과정도 다녔다.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대출받은 2천만 원으로 경산에 가게를 구했다. "더 이상 시행착오는 없어요. 희망만 붙들고 다시 달릴 뿐입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사진설명 : 실패할 때도 성공할 때도 부부는 함께 있었다. 새해는 성공만 있을 뿐이라고 부부는 말한다.
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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