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닭과 나무닭

입력 2005-01-03 11:24:40

중국 제(齊)나라의 기성자(紀省子)라는 현인이 임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싸움닭(鬪鷄)을 기르고 있었다.

닭싸움이 빨리 보고싶어 안달이 난 임금이 열흘도 안돼 '이제 싸울만 한가'고 물었다.

그러자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은 한창 제기운만 믿고 되지 못하게 사납기만 합니다'며 닭싸움 시킬 생각을 안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또 임금이 '이제는 싸울만 한가'고 물었다. 신하는 '아직도 다른 닭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봐도 곧장 달려들려고 합니다'며 싸움닭을 내놓지 않았다. 열흘 뒤 또 임금이 싸움을 시킬때가 되었느냐고 물었지만 역시 '아직 안됐습니다. 다른 닭을 보면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고 있습니다'고 대답했다.

다시 열흘 뒤 임금이 또 물었을때야 비로소 싸움닭을 내놓으며 말했다.

'이제는 거의 됐습니다. 다른 닭이 소리를 쳐도 아무렇지도 않아서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덕(德)이 온화하여 다른 닭들이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나버리고 맙니다.'

닭띠 새해를 맞으며 장자(莊子)의 싸움닭과 나무닭의 비유를 놓고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지난 2년과 남은 3년의 통치 리더십을 생각해 본다.

솔직히 2년전 집권 초기, 그들 집권그룹의 이미지와 정치 투쟁 스타일속에는 기성자가 말한 '제 기운만 믿고 사납기만 한' 싸움닭의 모습이 없지 않았다.

개혁을 몰아가며 통치경력을 수련해가는 과정에서도 야당과 보수세력, 비판적 언론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른 닭의 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봐도 곧장 달려드는'식의 전투적 자세를 떨쳐내지 못했다.

거칠고 공격적이며 절제되지 않은 언어를 고함치고 어떤 계층이든 나와 반대되거나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기만 하면 반개혁 수구 꼴통으로 몰아붙여 싸우려 드는 드센 모습에서 '다른 닭을 보면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는' 미완의 싸움닭의 모습을 연상케 해왔던 것이다.

거의 2년 내내 25~30% 안팎을 오르내리는 집권능력의 저평가와 낮은 지지도, 분열과 갈등의 확산이 바로 그러한 전투지향적이고 미숙한 싸움닭의 모습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싸움닭은 도(道)를 닦는 사람과 같아서 처음에는 제 기운만 믿고 되지 못하게 사납기만 하고 아무 닭에게나 달려들지만 점차 정신을 한곳에 쏟아부어 마치 나무닭처럼 되면 덕의 온화함으로 권위를 저절로 갖추게 된다'고 한 장자(莊子)의 말처럼 노무현 정권도 올 닭띠해부터는 미숙한 싸움닭에서 노련한 나무닭으로의 변신을 시작하려는 같다.

집권 2년만에야 치국(治國)의 도(道)를 깨닫기 시작한 것일까.

당장 노대통령의 올 신년사에는 지난 2년 아무 상대나 부닥치는 대로 논쟁으로 공격하고 거친 말로써 쏘아대던 싸움닭 같은 드센 수사(修辭)가 사라졌다 "올해는 싸울 일이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부족하고''송구스럽고''협력하자'는 말들이 등장하고 재벌을 성장의 선두에 세워 동반자로 끌어안고 진보보수도 따로 없다는 그동안 들어보기 어려웠던 덕담과 화합의 언어만 꽉 들어차있다. 정치권의 중심에 서있는 지도자가 늦게나마 나무닭의 경지에 다가가고 있음은 남은 3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반갑고 고무할만한 변화다.

끊임없이 주술을 외우듯 국민들과 야당'재벌'보수 언론 등을 향해 그들이 치는 박자에 맞춰 변화할것 만을 요구해온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지난 2년 그들의 요구속에는 합당하고 절실한 변화의 어젠다도 있었다. 보수세력이 기득권 보호를 위해 거부해서는 안될 반드시 변화해야할 요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를 외쳤던 그들쪽도 변화해야할때가 왔다. 개혁만능사고에 몰입해있어 보이는 소수 강경 세력들도 농성, 점거, 시위 등 체질화된 투쟁적 스타일에서 유연히 벗어나는 변화를 보여야 한다. 경제든 민생이든 싸움닭의 자세로는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새해 아침 '올해는 싸울일이 없을 것'이라고 한 지도자의 '나무닭'이 된듯한 변화는 우리에게 기대를 갖게 한다.

정치판의 싸움닭들이 너도나도 나무닭이 된다면 2005년 한해는 틀림없이 우리 모두에게 밝은 희망찬 한해가 될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나무닭으로의 변화를 지향하지 못한채 닭싸움으로 또한해 국운(國運)을 놓쳐버리면 경제든 미래든 '닭잡아 겪을 나그네 소잡아 겪는다'는 속담처럼 뒷날 더 큰 대가를 치르는 후회만 남을 수밖에 없을것이다. 닭띠 희망찬 새해에 다같이 나무닭이 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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