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조씨 병참공파 후손들이 370여 년 동안 집성촌을 이뤄 살아가는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속칭 주실마을은 80년 가까이 양력설을 쇠고 있다.
갑신년의 끝 자락과 을유년 새해 첫날을 맞은 주실마을은 한때는 250여 가구 1천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모여 사는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70여 가구 100여 명 주민이 고작이다. 새해 첫날 주민들은 조상들에게 차례상으로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한 다음 경로당에 모여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고 떡과 과일, 술 등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면서 덕담으로 얘기 꽃을 피웠다.
또 온 마을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윷놀이며 모둠살이를 하던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었지만 주실마을의 한양 조씨 후손들은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으로 이웃 간의 덕담과 미처 찾아오지 못한 후손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고향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조규영(47)씨는 "정부에서 신정연휴를 없애고 하루만 휴일로 정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80년을 넘게 지내 온 양력설 문화에서 후손들에게 일찌감치 개화와 신문화를 접하게 하려 했던 조상님들의 지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3년 전부터 이 마을 60, 70대 후손들이 중심이 돼 한국전쟁 이후 끊어졌던 팔목놀이와 화가투 놀이, 주사위놀이, 내방가사 읊기 등 주실마을의 전통놀이를 기억을 더듬어 재연하는 '민속놀이 대축제'를 마련해 양력 설 문화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 이 마을은 1629년(인조7년) 호은공 조전이 입행해 터를 닦았으며 이후 1894년까지 265년 간 이 마을에서 62명의 선비들이 대소과에 급제하고 수많은 문집을 남기는 등 문향의 반석을 다지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 마을은 관례와 혼례의 통합 등 생활개혁을 추진하고 월록서당 등 교육기관을 세워 후손들에게 일찌감치 배움의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또한 구 한말 의병운동과 개화개혁운동, 해외 신학촌 건설 등 독립운동에 뜻을 둔 인물들도 숱하게 배출됐으며 마을 안에 배영학당. 동진학교 등 노동야학과 여성야학을 세워 민족교육에 앞장서기도 했다.
민족시인 청록파 지훈 조동탁과 그의 형 세림 조동진 시인의 아버지 조헌영 선생은 신간회 중앙회 검사위원을 맡아 활동하면서 1927년부터 양력과세로 마을 설 문화를 개혁해 지금까지 78년째 이어오고 있다. 영양·김경돈기자 kd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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