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조해녕 시장·이의근지사에게 듣는다

입력 2005-01-01 11:30:02

지난해는 힘든 한해였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크게 쪼들렸다. 주부는 시장에서, 대학생은 취업문에서, 기업가는 공장에서, 회사원은 월급봉투 앞에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경북 지역은 더했다. 어둠 속, 긴 터널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을유년(乙酉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희망과 웃음을 기대할 수 있을까. 조해녕 대구시장, 이의근 경북도지사와 신년 대담을 갖고 희망의 메시지를 들어봤다. 본사 우정구 편집국장이 사회를 맡았다.

사회=먼저 올해 시·도정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달라.

시장=지금 세계사적 조류는 지방화와 세계화를 융합한 '글로칼리제이션'과 농업-산업-정보화 혁명으로 옮겨지는 '제3의 물결'이다. 이제는 어느 도시가 우수한 사람을 많이 갖고 있느냐가 바로 경쟁력이다. 대구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공감대 속에서 세계사적 흐름과 변화를 인식하고, 문화와 예술, 디자인 등을 결합해 신산업으로 나아간다면 분명히 희망이 보인다.

지사=지식기반, 문화, 정보, 세계화 시대에 맞춰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지방분권 어젠다와 경북의 잠재력을 어떻게 접목해 발전시킬 것인가가 과제다. 경북도는 잠재력이 많지만 아직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했다. 경북북부와 동해안의 물류를 소통시키고 전통문화를 관광자원화하며, 선비정신 등 지역 정체성을 발전동력으로 승화시키면 경제문제도, 지역 통합 문제도 모두 풀 수 있다.

사회=현재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지사=1차 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신산업 동력산업과 바이오 문화산업으로 개편하고, 경주엑스포에서 보듯 도내 각종 문화자산을 문화관광산업으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울진에서 충남 당진까지, 영덕에서 충남 서천까지 등을 잇는 동서 5축 고속도로를 빨리 건설하고, 동해안을 U자형으로 개발해 국내외 기업을 유치하며 사람이 몰리는 지역으로 만들겠다.

시장=과학기술 중심도시로 가기 위한 대구테크노폴리스, 문화산업 클러스터, 한방바이오산업 등을 육성할 계획이다. 또 전통 주력산업인 섬유, 기계, 금속, 자동차부품산업을 고부가가치화하고 공연, 컨벤션, 보건의료 콜센터 등 대도시형 서비스산업을 중점 육성한다면 새로운 대구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사회=밀라노프로젝트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다. 타당성과 향후 추진 방향은.

시장=대구의 전통 기반인 섬유를 살리고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밀라노프로젝트는 섬유산업을 혁신주도형 고부가가치산업으로 구조를 바꾸고, 대구를 △패션 △디자인 △어패럴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이다. 현재 중국의 제품이 세계시장을 파고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부가가치를 높여 이를 돌파하고 있다.

지사=6천억 원을 넘게 투자해 하드웨어를 구축했다. 일부는 기술개발 등에 소홀한 채 하드웨어 쪽에만 투자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트밀라노 프로젝트에서는 기술개발, 섬유기계, 패션분야에 더 투자할 것이다. 경북도는 섬유기계분야 육성을 위해 산업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섬유기계연구소'를 만들었다. 현재 섬유기계의 80%를 수입하고 있는데, 이를 국산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회=시·도가 경제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복지분야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지사=경제는 도 본청이 실천기능을 맡지만 복지는 도가 기획기능을 하고 실천은 시·군 단위에서 집중하고 있다. 때문에 복지분야는 경북도 본청보다 시·군의 기능이 강화돼 있다. 노인, 장애인, 청소년 가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읍·면 단위의 복지공무원을 늘리고, 주민 건강을 위한 보건지소를 동네마다 설치했다. 치매병원 등 노인복지시설도 경북이 가장 많다. 특히 자원봉사자 확충 등 주민 가까이에 사회안전망을 구축했다.

시장=시 예산에서 사회복지분야의 비중이 일반회계의 17~18%로 많은 편이다. 다만, 초고령사회에 대한 대비책은 특히 필요하다. 작년에 '고령화사회 대비 노인복지정책 중기계획'을 마련했다. 예전에는 30년 공부, 30년 일, 10년 부양받는 사회였으나, 이제는 30년을 부양받아야 할 시대로 바뀌었다. 분권화, 지방화 시대에서는 자원봉사를 활용한 '제3섹터 방식'을 통한 안전망 구축이 중요하다. 재해, 구빈 문제 등도 마찬가지다.

사회=국가균형발전과 관련, 지역의 공공기관 유치활동이 부진하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보나.

시장=로비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그렇지만 비공식적으로 열심히 유치활동을 펴고 있다. 정부가 처음에는 지자체별로 경쟁을 붙였지만, 이제는 원칙을 정해 지역특성에 맞는 기관을 안배하는 상황이다.

지사=정부는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틀을 벌써 다 얽어놓고 있고, 현재 그 실효성을 고민하고 있다. 노조 반발 등 실천담보 문제와 발표시점을 고민하고 있다.

사회=지방자치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유치 등 '경제살리기'가 잘 안 되고, 지역을 떠나고 싶다는 시·도민들도 적지 않다. 해법이 있나.

지사=인구가 줄고 있는 것은 경북뿐 아니라 어느 농촌이나 마찬가지다. 지식정보화 산업으로 나가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농촌은 아직도 교육·문화의 차이 때문에 60,70년대 상황 그대로다. 직업선택, 문화, 교육 등 문제와 함께 출생률 감소 등 구조적인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경북도는 자연환경, 역사성, 미래발전 가능성 등 잠재력이 큰 만큼 다른 지역보다는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인구감소 문제는 수도권 집중문제를 해소하고,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풀어나갈 수 있다. 구미, 안동, 포항을 축으로 '선택과 집중'을 고려해 농촌의 구조를 개선해 간다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시장=호전되고 있는 수출이 투자마인드로 연결되지 않고, 내수경제가 어렵다. 그나마 대구는 기계·금속이 버텨주고 있지만, 섬유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용이 줄고 부가가치는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화강세, 달러약세, 유가상승 등이 겹쳐 '한겨울에 소낙비를 맞고 있는' 격이다. 단기적으로는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심리적인 위축감도 큰 문제다. 그러나 현재의 지식 정보화시대에는 인재가 성장·발전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대구는 고급 인력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풍부한 만큼 성장 잠재력도 크다. 중·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을 살리면 대구도 태평양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사회=대구·경북은 시·도민 사이에 유대감이 강하다. 자치단체 이기주의에 빠지면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각종 현안을 서로 의논하고 교류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 입지문제 등 대구·경북이 서로 협력하고 합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많다. 대구·경북이 상생하는 측면에서 어떻게 보나.

시장=지하철 경산연장 문제 등에서 보듯 어느 때보다도 대구·경북이 잘 협력하고 있다. 문제는 수도권 과밀화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균형발전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문화산업 육성 측면에서 연구개발(R&D) 기능을 어떻게 분산시키느냐가 국토균형발전의 관건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전은 수도권, 대구는 동남권, 광주는 서남권의 연구개발 허브로 자리 잡아야 한다. 동남권은 대구를 중심으로 울산, 마산, 창원, 구미, 포항 등에 국내 제조업 부가가치의 58%가 집중돼 있다. 그러나 설비 과잉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신기술 발전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대구를 동남권의 연구개발 허브로 발전시켜야 한다.

지사=대구·경북이 분리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 예산과 조직 등 제도적으로 갈라져 경쟁하지만 다른 부문은 모두 협력하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의 경우 한전, 도로공사 등은 논리적으로 경북도에 와야 마땅하다. 원자력발전소는 울진, 월성 등 경북지역에 60% 이상 있지만 다른 어느 지역도 위치하지 않고 있다. 생산 원전이 있는 곳에 전력관리기관이 들어와야 한다. 도로공사도 경북도의 교통량이 가장 많고, 개설할 도로도 많은 만큼 경북도에 유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정부가 대구시에 주겠다고 하면 양보할 수 있다. 어떤 기관이든 선의의 경쟁이 가능하고, 상생을 위해서라면 양보할 수도 있다.

사회=행정지원 측면에서 공무원들의 열린 마인드도 필요한 것 아닌가.

시장=분권과 혁신은 큰 시대 흐름이다. 정부 주도의 성장제일주의에서 지방분권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나가야 한다. 공무원이 바뀌어야 함은 분명하다. 과거에는 공무원이 주도적으로 다했지만 지방화 시대에서는 전문가, 시민단체, 이익집단의 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지방 공무원은 주인의식을 갖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과거처럼 권위주의 방식으로 밀어붙여서는 곤란하다. 관은 지배적 의식구조를 바꾸고, 시민단체는 저항적 시민운동 방식을 고쳐야 한다.

사회=광역단체장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보는가. 관료나 전문경영인을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지사='누가 된다, 안 된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도자로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 경북에는 250여 개의 시민단체를 비롯한 군부대, 대학 등 다양한 기관과 단체가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합하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직자든 기업가든 광역단체장으로 손색이 없다.

사회=시장께서는 사석에서 재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향후 정치적 행보는.

시장=언제 재출마하지 않는다고 했느냐?(웃음) 임기 4년은 짧지 않다. 그 후는 다음에 생각할 문제다. 시장, 도지사가 아니라도 할 일이 많지 않으냐.

사회=지사께서는 역대 최장수 경북지사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임기가 1년 6개월가량 남았지만, 향후 계획은.

지사=95년 초에 6개월 동안 용역을 맡겨 '경북도 21세기 비전'을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도정을 이끌어왔다. 10년 동안 지사 일을 해오면서 이젠 틀도 좀 잡혔고, 효과도 나고 있다. 앞으로 21세기 경북의 틀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싶다.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도지사를 마치고, 기회가 된다면 국가나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

사회=대구·경북은 인재가 많은 지역이지만, 경륜 있는 분 상당수는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서울로 간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시장=호남에서 시집 온 사람이 '30년이 지나도 이방인 같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 지역은 너무 닫혀 있다. 국가경영이나 지역발전을 위해 참여하고 기여한 사람들이 지역에 정착하면, 고향에 돌아온 것을 시·도민이 환영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야 한다. 그나마 최근에는 일부 출향인사와 외지인들이 지역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 분위기도 점점 나아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지사=대구·경북 지역은 양반과 선비의 고장이다. 그러나 인재를 키우지 않는 풍토가 없지않아 큰 문제다. 능력있고 노력하는 사람은 끝까지 밀어줘야 하는데, 잘 하는 것은 평가하지 않고 사소한 잘못만 비난하는 풍토가 있다. 이런 면에서 서울은 자유롭다. 경륜 있는 분들이 지역으로 되돌아와 지역 원로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지역에서 살더라도 원로로서 아껴주고, 자그마한 흠은 덮어주는 풍토가 아쉽다. 큰 사람을 대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끝으로 올 한해 시·도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

지사=경북은 역사적으로 국가발전의 중심지로 위상을 지켜왔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고, 조국 근대화 운동을 주도하는 등 어려울 때마다 저력을 발휘했다. 이제는 동북아 시대를 선도하는 중심지이자,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지역으로 거듭나야 한다. 경북도는 백두대간이 뻗쳐 내리고, 내륙의 중심에 낙동강이 흐르고, 동해의 푸른 바다가 감싸안고 있다. 5천년 역사를 웅변하는 전통문화가 있다. 전국 문화재의 20%가 산재해 있고, 39개 대학에서 인재들이 양성되고 있다. 발전 잠재력이 크다. 21세기에는 환경이 쾌적하고 문화가 풍부한 곳에 기업과 사람이 모인다. 경북의 앞날은 분명히 밝다. 충분히 희망을 가질 만하다.

시장=우리 모두 '갈등과 분출'에서 '나눔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기를 당부드린다. 경제가 어렵지만, 이해하고 베풀수록 사회는 밝아진다. 시민 갈등과 이익단체의 자기욕구 분출이 지역 사회를 더욱 갈라놓고 어렵게 하는 원심력이 아니라, 지역 사회를 더 한층 뭉치고 성장동력이 되는 구심력이 되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산업화 시대를 넘어 문화산업과 정보기술(IT)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내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 시대에 인재는 경쟁력이다. 대구는 인재가 어느 지역보다 많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교육, 문화 도시다. 대구가 계속 침체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속단할 이유는 결코 없다. 우리 모두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면 대구는 분명히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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