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길거리로 뛰쳐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한 영화인의 이런 강경 발언이 새삼스럽지 않을 만큼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 몇 년 사이 가장 뜨거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올 여름 문화관광부의 쿼터제 축소 방침이 발표된 후 영화계는 지난 99년 거리집회 이후 가장 높은 강도로 반발을 드러냈다. 이후 한동안 경제계와 영화계가 서로 돌출 발언과 성명서 발표를 주고받았고 논쟁은 수그러든 양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상황은 2005년의 본격적인 격론을 앞둔 폭풍전야처럼 불안함을 안고 있다.
미국측의 압력과 일부 경제계의 동조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영화계는 '투쟁' 혹은 '저항'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사생결단'의 자세로 나가고 있다.
▲"하루도 양보 못한다"VS"실익위해 축소 불가피"
쿼터제 유지를 주장하는 쪽은 문화 다양성 수호의 중요함이나 한국 영화의 발전에서 쿼터제가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그리고 일부 흥행작을 제외하고는 영화 시장이 아직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BIT(한미투자협정) 자체의 무용함에 논점을 맞추고 있다. BIT는 한국 경제 발전의 발판이 될 수 없는 일방적인 협정에 불과하며 국부의 창출 차원에서도 쿼터제의 존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경제단체들은 한국의 최대 교역시장인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한국 영화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스크린쿼터의 축소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영화산업 역시 다른 문화산업과 마찬가지로 외국 영화와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진정한 경쟁력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인들, 영진법 개정안에 쿼터제 명시 노력
영화 단체들의 연합체인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이하 영화인대책위, 공동위원장 정지영·안성기)는 쿼터제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현재 시행령에 의거해 시행되고 있는 스크린쿼터제를 모법인 영화진흥법에 명시하는데 우선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쿼터제에 대한 법률적인 근거를 확실히 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축소 움직임에 쐐기를 박겠다는 것이 취지. 이들의 노력은 지난 7월 한나라당의 정병국 의원을 비롯한 여야의원 38명의 발의로 이런 내용을 담은 영화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빛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지지를 약속했던 일부 의원들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으면서 일단은 법안 통과가 미지수인 상태다. 최근 문광부가 11월 발표한 새 영화진흥법안에도 스크린쿼터제의 구체적인 일수 조항 신설은 빠져있다.
영화인대책위의 양기환사무국장은 "모법에 쿼터제를 명시하는 것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가장 유력한 방안"이라며 "이를 위해 의원 개개인에 대한 설득작업에서 정당 항의방문까지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문화부, '쿼터문제와 대미협상 무관' 원칙 지켜질까?
문화부는 지난 6월 쿼터제 축소 방침을 밝히면서 "스크린쿼터 축소조정 및 변화는 대미협상과는 무관하게 어디까지나 우리 영화산업을 위한 주체적 정책판단에 따라 논의한다"라는 원칙을 정한 바 있다. 통상 협상과 분리해서 쿼터제 문제를 논의해나가겠다는 것.
하지만, 쿼터제를 둘러싼 논쟁은 대미 협상과 연관지어지며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쿼터제 축소 압력은 최근 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스크린쿼터 문제는 BIT를 맺기 위한 선결과제"라는 미국 상무부 차관보의 말이나 "FTA(자유무역협정)와 스크린쿼터 중 한가지만 택해야 한다"는 미국 대사의 말은 명백히 통상과 쿼터문제를 연결시키는 발언. 경제계도 문화 자체의 가치보다는 통상의 실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2005년에도 쿼터제 논란은 한국과 미국간 통상 협상 일정에 맞춰 불거질 전망이다. 특히 1월 혹은 2월에는 한국과 미국이 BIT의 다음 단계인 FTA 추진 가능성 논의를 위한 예비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며 이 자리에서 쿼터제의 대폭 축소 주장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인대책위는 현재 '문화는 통상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 논리를 유지하는 한편 BIT 자체가 그다지 실리가 없다는 주장에도 힘을 싣고 있다.
▲내부 다양성 문제 변수 될 듯
영화계의 내부 다양성 문제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진다.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의 빈익빈 부익부현상의 해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종합적인 발전은 쿼터제 유지와 병행되어야 할 일이며 쿼터제 축소는 오히려 '작은 영화'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반박하고 있다.
문화부는 현재 스크린쿼터 축소와 함께 상업성이 떨어지는 작은 영화, 실험적인 영화 등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 정치권 일각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내부 다양성의 문제는 외부만큼 내부에서의 의견 대립도 낳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영화인들이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마이너리티 쿼터제' 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쿼터제 문제를 영화계 발전을 위한 다른 방안과 연관지어 협상하자는 의견도 없지는 않다.
'작은 영화'의 극장난(難)이라는 오래된 문제로 인한 영화인들에 대한 반감이 영화팬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영화계에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영화인대책위는 "홍보 활동을 통해 스크린쿼터 문제와 한국 영화의 '종합적' 발전은 다른 사항이라는 내용을 알리고 있다"고 설명하며 "쿼터제에 대해 영화계 내에 극히 일부의 다른 의견이 있겠지만 이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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