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울릉종고(綜高)교장선생님은 1년 365일 해맞이를 한다. 독도 경비요원들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이곳 해돋이를 보는 사람인 셈이다.
학교 교정 국기게양대 앞에 서면 정면에 펼쳐진 동해 수평선이 직각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운동?뒤의 교원 사택에 기숙하는 교사들도 해맞이를 자주 할 수 있지만 방학 때 육지로 가 있을 때가 많아서 학교를 지키는 교장선생님이 아무래도 해돋이를 좀 더 자주보게 된다.
얼마 전 그곳에서 근무했던 L교장은 해맞이 때 특별히 소원을 비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흐린 날을 빼면 거의 1년에 300일 가까이 아침 해돋이를 보다 보니 새해 아침 단 한 번 해맞이 하려고 세모부터 바다나 산꼭대기로 몰려가는 해맞이 행렬들의 염원같은 건 별반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넘치고 지천에 널리면 감흥도 시들하고, 욱일(旭日)의 강렬한 빛도 그저 평범한 일상의 자극으로 느껴질 뿐임을 L교장의 해맞이에서 생각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올 세모에도 단 한 번 수평선과 지평선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 바다로 떠날 준비를 하고 지역 자치단체들은 저마다 해맞이 행사 준비가 요란스럽다. 바다를 낀 도시들은 경쟁적으로 톡톡 튀는 이벤트를 마련하고 바다가 잘 보이는 숙박업소들은 예약이 동났다고 한다.
포항은 국내 최대 규모의 가마솥을 동원해 1만 명이 먹을 수 있는 떡국을 끓이고 5천개의 캔커피도 준비했다.
영덕군은 철맞은 대게와 2천5개의 헬륨 풍선 등을 내걸고 해상공원 해맞이 축제를 홍보하고 안동'구미'영양'문경'칠곡'대구 등 바다가 먼 내륙 자치단체도 산봉우리 해맞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토함산, 일월산, 일출봉, 주흘산, 금오산… 1년내 산행(山行)으로 길 익은 봉우리지만 사람들은 새해 해맞이 등반에는 뭔가 다른 의미를 담으려 한다.
거의 모든 지자체의 해맞이행사에서 타종이나 북 두드리는 이벤트가 빠짐없이 끼어 있는 것도 새해의 첫 해돋이 순간에는 뭔가 새로운 희망, 치솟는 기운(氣運)을 힘차게 펴보고 싶은 바람을 담고 있다. L교장의 말대로 1년 내내 늘 똑같이 똑같은 곳에서 떠올랐던 같은 해인데도 유별나게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는 무언가 소원을 빌어보고 각오를 다짐하려드는 심정은 어떻게 보면 속절없는 자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갈수록 새해 해맞이 행사는 커지고 북적댄다. 그만큼 세상 살아가는 일이 무언가에 기대고 싶을 만큼 벅차고 피곤해졌다는 것일까.
어쨌거나 새해에도 어차피 지자체마다 판은 벌려놓은 마당이니 해맞이로 축처져 있는 운기와 심기(心氣)를 다시 힘차게 일으켜 세워보자.
먼 바닷길까지 해맞이 행렬에 끼이기도 힘든 자가용 차도 없는 서민들,바닷가 인파속에서 기 펴고 신나게 해맞이 구경을 할 기분이 안나는 젊은 실업자들도 마음속에서나마 뜨거운 해를 띄워 올려 보자.
지난 한해 우리 모두의 고된 기억과 아픔일랑 바다 저멀리 파도 속에 씻어 떠내려 보내고 문무대왕릉 위로 띄워 올릴 1천개의 연처럼 새해의 꿈과 희망과 용기를 하늘 높이 다시 띄워 올리자.
엊그제 '이제부터는 잘 해보자'라고 한 지도자의 말을 믿어보면서. 설사 그 말이 허언(虛言)이 되고 또 다시 실망만 안겨주더라도 내일의 아침 해는 다시 솟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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