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2004 안녕!

입력 2004-12-27 14:35:06

크리스마스 이브 분위기가 절정을 이루던 저녁, 가족들과 함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신작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러 시내에 나갔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제자들이 디즈니픽사에서 만든 3D 애니메이션인 '인크레더블'을 강력 추천하였지만 미야자키식의 아날로그적 순수함이 더 끌렸다.

마녀의 저주 때문에 90세 할머니로 변한 18세 소녀 소피와 마법사 하울의 모험담과 로맨스를 그린 이 작품은 역시 미야자키표 애니메이션이 주는 판타지와 모험 등이 감독의 기발한 상상력과 잘 어우러진 수작이었다.

이제까지 미야자키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1년에서 길게는 10년 전의 작품이 소개된 것과는 달리 일본과 겨우 한 달 간격밖에 두지 않고 국내에 개봉되었기 때문인지 관객들의 반응도 매우 뜨거웠다.

관객층도 상당수가 청소년 이상의 성인들이 많았는데 부러움을 넘어서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얼마전 관계자들의 큰 기대 속에 개봉되었던 국내 만화가 원작의 애니메이션 '신 암행어사'가 어느날 소리 소문도 없이 극장가에서 철수했던 것과 비교되어 씁쓸한 기분까지 들었던 것이다.

이제 2004년이 저물어 간다.

마치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감상한 것처럼 호기심과 기대로 시작되어 수많은 사건과 위기, 갈등을 극복하며 어느 순간 끝을 맺고 있다.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내 기억 속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도 언제쯤 미야자키 하야오 이상 가는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 수 있을까? 일본 내 흥행수익만 해도 이미 1천억 원을 넘어섰고, 5천만 명의 관객몰이를 예상하는 엄청난 산업적 효과를 마냥 부러워하기에는 지난 40년의 숙련된 기술과 우리 민족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아깝게 여겨진다.

다가오는 2005년에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어려운 경제난을 덜어주는 흥행 작품도 많이 나오길 바란다.

남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발랄한 상상력과 기술력을 두루 갖춘 훌륭한 애니메이터와 작품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보다 더 많이 쏟아지길 기대해 본다.

이재웅 협성 애니메이션아트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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