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이 고통에 가슴 미어져…"

입력 2004-12-22 12:37:59

현빈이 엄마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9살배기 아들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백짓장같이 하얀 얼굴에 빡빡머리 현빈이도 엄마 등 뒤에서 빙긋이 웃었다. 항암치료가 무척이나 힘들텐데도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 참 묘하게도 슬펐다. 이 애에게는 고통이 생활이 된 것일까.

현빈이는 늘 코를 훌쩍거리는'훌쩍이'였다. 창문 틈으로 햇볕 한 움큼 들어오지 않고 곰팡이가 방안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반지하 단칸방. 현빈이는 그곳에서 8년을 훌쩍거리며 살았다. 엄마도, 찾아간 병원에서도 다 '감기겠거니'했다.

지난 해 겨울. 햇볕이 한 움큼보다 조금 많이 들어오는 집을 전세로 얻었다. 엄마는 밝고 따뜻한 집을 얻었으니 현빈이의 감기도 뚝 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빈이는 이사한 직후부터 더 이상해졌다. 며칠동안 잠만 잤고 입술이 부어서 터졌고 열이 심해졌다. 결국 크리스마스 이브, 아픔을 잘 참던 현빈이는 '손발이 저리다'며 처음으로 신경질을 부렸고 엄마, 아빠는 밤새 현빈이의 온 몸을 주물렀다.

현빈이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사실은 크리스마스 오후에 알았다.

"다 제 잘못이에요. 감기겠거니 한 것이 백혈병이 된거예요. 머리카락이 빠지고 홀쭉해지고 피를 토해내는데도 잘 몰랐으니…."

밤새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은 엄마는 현빈이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항암치료라며 그 독한 약병을 4개나 주렁주렁 달았어요. 온 몸이 축 늘어지는데도 그 독한 치료를 20일 동안 했어요.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현빈이가 항암치료를 시작한 것이 벌써 1년. 그간 1억 원이 넘는 치료비가 들었고 면역이 약해진 현빈이에게 두 차례나 합병증이 찾아왔다.

대장, 소장이 연결되는 지점에 염증이 생겨 '암포씨'라는 약물을 60병이나 넣었다. 또 곰팡이가 폐에 들러붙어 폐 하나를 잘라 냈다. 골방 곰팡이의 끈질긴 생명력이 백혈병을 앓고 있는 현빈이 몸에까지 침투한 것이다.

"암포씨를 맞으면 애가 30분이나 부들부들 떨어요. 이불을 겹겹이 덮어줘도 소용없어요. 곰팡이도 양쪽 폐에 집을 딱딱하게 지었어요. 저 작은 아이가 어떻게 감당하라고…."

이제 현빈이는 다른 애들처럼 뛰어놀지 못하고 그 좋아하던 자전거 타는 것도, 축구도 못하게 됐다. 다 나으면 축구공부터 살 거라고 했는데.

엄마는 병원 치료비를 대기 위해 카드사, 은행, 친인척들로부터 빌린 돈만 벌써 5천만원이 넘는다. 어렵게 얻은 전세를 뺐고 차를 팔았다.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는 아빠도 요즘 수입이 없다.

"그 무뚝뚝한 남편이 술을 먹고 울면서'애 살려야된다, 애 살려야된다'하며 울었어요. 다른 애들처럼 해맑게 키우자고 살려내자고 우린 밤마다 약속해요. 우리 현빈이 얼마나 착한 아인데…."

엄마는 매시간 현빈이의 체온이 올라가지 않기를, 혈소판이 모자라 실핏줄이 터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현빈이 방 책상에는 감귤이 한 상자 가득 있었다. 쓰디쓴 약을 먹고 한개씩 까먹는 현빈이의 유일한 간식이었다. 저희 '아름다운 함께살기 '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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