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끝자락에 만나는 사람마다 참외 꽃 같은 선웃음뿐이다.
문득 이상화 시 한편이 떠오른다.
"어제나 오늘 보이는 사람마다 숨결이 막힌다.
/ 오래간만에 만나는 반가움도 없이/ 참외꽃 같은 얼굴에 선웃음이 집을 짓더라./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맛도 없이/ 고사리 같은 주먹에 진땀물이 굽이치더라./ 저 하늘에다 봉창이나 뚫으랴 숨결이 막힌다.
"
이런 답답함 탓인가. 한 때, 신화적인 목소리로 들었던 체 게바라 평전이 최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인간만을 믿으며 늘 인간을 구속하는 인간에 저항했던 체 게바라, 한 마디로 그는 직업 혁명가였지만 풍부한 시적 감수성도 갖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고 주문했다.
'불가능한 꿈', 그것은 시적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닌가.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뒤 쿠바의 2인자가 되었다.
그 자리를 박차고 아프리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 등지에서 게릴라활동을 하다가 숨졌다.
이런 생애 자체가 냉철한 리얼리스트의 불가능한 꿈일 것이다.
치열하게 역사에 맞섰던 저항 시인 이상화도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며, 빼앗긴 들판을 헤매던 낭만주의자였다.
체 게바라와 이상화는 사상이나 저항 방식에 있어서 다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에게 엄격했다는 점이다.
체 게바라는 전투복 속에 괴테의 전기를 넣어놓고 밑줄을 치며 자신을 다스렸다.
이상화는 시의 채찍으로 자신을 내려쳤다.
문제는 체 게바라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체 게바라의 사상적 뿌리인 마르크스주의도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로 빛이 바랜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노랑머리 우리 신세대 젊은이들은 한 손에 체 게바라의 평전을 다른 한편에 그의 시집을 들고 있다.
그들이 체 게바라를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그를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평가한 근원적인 이해에 그 맥이 닿아 있는 것일까.
나는, 그가 솔직한 인간이었기 때문이기에, 우리가 그를 다시 찾는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내부에 자리하는 오만한 권력의 의지를 고백했다.
"동지들이여/ 나 역시 내 안에 파쇼가/ 전혀 없다고 말하지 않겠다/ 아니/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을지 모른다"고. 그렇다.
이 시대 우리는 혁명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솔직한 인간을 그리워할 뿐이다.
조두섭 시인·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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