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칼럼-한류와 일류

입력 2004-12-21 09:01:31

잘되면 2005년 1월 1일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새로 나온 책 한권을 손에 쥐게 될지도 모른다.

제목은 아직 확정이 안됐다.

오늘이 12월 21일인데도 제목이 안 나왔다.

가제가 있긴 한데 '한(韓)류를 넘기면 일(日)류가 보인다' '조영남의 친일파 선언' 같은 것들이다.

제목이 내용보다 중요하다는 추세라서 그런지 좋은 책제목은 어딘가에 꼭꼭 숨어서 찾아낼 도리가 없다.

출판사와 11월 말에 만나서 책을 만들기로 합의를 봤는데 하필 책이 2005년 1월 1일 신정 날 아침에 나와야 한다고 해서 왜 그렇게 급하냐고 했더니 신정 때가 되면 문화공황상태가 벌어지기 때문에 그게 책 낼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그럼 내가 원고를 20일 내에 써서 내야 편집하고 디자인해서 출간날짜에 맞춘다는 결론이 나왔고, 나는 그토록 책 한권을 20일 만에 써 내는 일이 무슨 모험이나 탐험을 하는 기분이 들어 그렇게 해보자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던 것이다.

정녕 모험이나 탐험일 수밖에 없는 게 지난 9월말 나는 일본문화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의 초청으로 7박 8일 일본을 공식방문했던 건데 그걸 뼈대 삼아서 책 한권을 써 낸다는 게 모험이나 탐험으로밖에 느껴질 수 없었다.

그러니까 7박 8일의 결과를 책 한권 분량으로 뻥튀기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나한테는 도전으로 느껴졌던 거다.그럼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 그것부터 얘기해야겠다.

2002년 6월로 거슬러 가야 한다.

한일월드컵 때였다.

나는 참 공교롭게도 '조영남이 만난 사람'이라는 TV토크쇼 제작팀과 함께 일본 현지에서 양방언 김연자 MK모범택시 사장님 등을 인터뷰할 때 한국의 8강 경기가 열렸고 나는 4강 경기까지 모두 도쿄에서 TV로 봐야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어떤 큰 식당에서 TV를 놓고 보거나 주일대사관 앞마당에 설치한 대형 TV화면을 통해서 보거나 그걸 구경하면서 한국축구팀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반수이상이 순수 일본인으로 보여 진위를 물어봤더니 진짜 일본사람들이었다.

나는 당연히 당신들은 일본사람들인데 왜 한국축구를 그렇게 응원하냐했더니 별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이 한국이 유일한 아시아 대표로 올라섰는데 같은 아시안으로서 응원하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는 식으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16강에서 떨어지고 일본이 8강과 4강에 올랐다면 나는 아마 울화가 치밀어서 TV시청조차 안했을 것이다.

'재~팬 짝짝짝 짝짝' 손뼉도 안쳤을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서 중앙 일간신문에 내가 보고들은 대로 쓰면서 이제부터 나를 공개적인 지일파로 알아달라고 큰소리를 쳐놨었다.

지일파라고 해서 나는 몰매를 맞을 줄 알았는데 1년 간 무사히 지나갔다.

그리고 정확히 2003년 6월께 우리의 새 노무현 대통령께서 일본을 전격방문, 일본의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거기서 박수를 18차례나 받는다.

나는 또 그걸 TV로 봤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인가 후인가 노 대통령이 한국의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연설중간에 단 한번도 박수가 안 나왔다는 어느 신문의 기사를 읽고 이번에 내친김에 일본의회의 예의있음에 반해서 나는 친일파를 선언한다고 써댔다.

나는 워낙 남이 안하는 짓만 골라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늘 그러려니 하면서 넘겨준다.

그런 식으로 또 무사히 넘어갔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월드컵이 끝나고부터는 2년 만이다.

어느 날 일본국제교류기금이라는 데서 연락이 왔다.

일본에 초청하면 오겠냐는 것이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또 일본에서 보고 온 풍물을 5회에 걸쳐서 썼다.

그것을 뼈대로 이번에 책 한권을 만들어내자는 것이었다.

지난 6개월간 글을 쓰면서 부산과 대구에 이래저래 정이 많이 들었다.

내년 신정 때 가다오다 심심하면 조영남 이름이 든 책 한권씩 사보시길 바란다.

'아하! 바로 이 책이었구나'하면서 말이다.

오는 새해도 두루 재밌게 잘들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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