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밤새도록 입시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는 다 들어가서 올라온 모든 게시물을 읽습니다. 농담이나 뜬소문으로 보여도 제가 지원할 대학과 관련이 있으면 무조건 메모합니다.엄마는 벌써 진학 상담을 해 주는 대구 시내 모든 학원에 다녀왔습니다. 어떤 학원에는 두세 번을 가기도 했습니다.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다고 엄마와 함께 서울에 다녀온 것도 세 번입니다.
원서는 접수 마지막 날 쓰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서울에서, 저는 대구에서, 형은 대구의 또 다른 대학에서 대기하며 마감 직전에 경쟁률을 확인한 뒤 의논해서 낼 계획입니다. 마지막까지 도와주십시오."
한 학원 상담실 관계자에게 보내온 수험생의 e-mail 한 부분이다. 장문의 편지 속에는 수험생과 가족들의 피 말리는 하루하루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고교 3년을 대학입시에 매달려 이미 내신 성적이 결정되고, 수능 점수까지 나와 더 이상 달라질 조건도 없지만 수험생과 가족들의 입시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니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는 분위기다.
대학입시 정보나 관련 기사에 전략, 작전, 공략 등의 용어가 이리도 흔하게 등장하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운이나 눈치 같이 불확실성과 잔재주를 대표하는 말들이 수험생의 장래를 결정하는 대학입시의 중심에서 버젓이 통용되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전쟁처럼 비장하게 임하는 대학입시지만 올해는 누구도 안심하지 못 하고 만족할 수 없는, 승자 없는 전투만 남길 전망이다.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도 선택을 잘못 해서 손해를 봐야 하고, 점수를 놓고 최선의 패를 잡기 위해 갖가지 조합을 해 보다가 대학별 요강이 너무나 복잡해 사교육 시장을 찾아야 하고, 원서 접수 막판까지 007 영화를 방불케 하는 눈치작전을 벌여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코 인정과 승복이라는 승부의 마지막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합격과 불합격이 승부를 종결짓지도 않는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불합격한 수험생은 책임을 질 수도, 결과를 인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합격한 수험생조차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를 운이나 눈치 따위로 미뤄버릴 것이다.
착잡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교육부 장관의 인터넷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이번 입시 결과에 대한 성찰은 한 줄도 없이 올 한 해 동안 좋았던 정책 결과만 담아 "우리 교육에는 희망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보내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편지 끝 부분에는 "자조와 자학의 교육 현실을 긍지와 보람의 희망찬 교육으로 바꾸어 나가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그 위로 "결과에 관계없이 분명히 재수를 생각"이라고 적힌 앞서 수험생의 편지가 실루엣처럼 스쳐갔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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