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두 부부

입력 2004-12-18 12:50:51

살다보면 가끔씩 '으잉!'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때가 있다. 대개는 엽기적인 사건 등에 대한 반응이지만, 반대로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그런 감탄사가 터져나올 때가 있다. 같은 '으잉!'이지만 그 느낌의 질(質)은 천양지차이다. 전자는 기분을 영 찝찝하게 만들지만, 후자는 봄날 훈풍처럼 따뜻한 기운이 가슴 속을 채운다.

▲ 한 70대 노부부가 암을 완쾌시켜준데 대한 보은의 뜻으로 88억이라는 거액을 암치료와 연구를 위해 서울대 의대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참 기분좋은 하루를 보내게 한다. 그것도 익명을 당부했다 하니 그 겸허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세상 먼지로 울울하던 가슴이 깊은 산 속 달고 시원한 옹달샘 물 한 바가지를 마신 듯 상쾌해진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돈을 쓰지않는다는 자세로 검소하게 살아온 노부부는 "자식들에게 필요 이상의 재산을 물려줄 생각도 없고, 호사스럽게 살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자녀들도 부모의 거액 기부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하니 훌륭한 부모에 훌륭한 자식이다.

▲또 한 부부는 절로 혀를 차게 만든다. 장영자'이철희씨 부부. 지난 82년 6천400억원대 어음사기 사건과 94년 140억원대 차용사기 사건으로 구속과 가석방, 재수감 등을 거듭하며 18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는 장씨에게 징역 2년, 이씨에겐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그들의 '사기인생'이 참으로 딱할 정도다. 남의 피를 빨아 끝없이 부(富)를 부풀리려던, 지나친 욕심 탓이다.

▲탈무드에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두 손을 불끈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두 손을 가지런히 펴고 떠난다'라고 했다. 인생이란 맨 손으로 왔다가 맨 손으로 간다는 말이다. "자식들에게 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최상의 교육이자 유산"이라는 노부부 앞에서 온갖 변칙 수단을 동원해 자녀들에게 재산 물려주기에 혈안이 된 일부 재벌들이 초라해 보인다.

▲평생 검약한 생활을 하며 모은 거액을 아낌없이 내놓는 사람들을 두고 더러 어리석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어리석음(大愚)은 큰 지혜(大智)에 통한다'고 했다. 인생의 황금기를 철창에서 허비한 장'이씨 부부를 보며 성서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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