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은퇴는 하지만 한국을 사랑하고 독일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은 계속할 겁니다."
지난 23년 동안 주독 한국 대사관과 문화홍보원에서 독일 민간 부문에 대한 섭외와 홍보, 자문 등을 맡아온 우르줄라 디체만(65) 박사가 이달 말 자신의 인생에서 3분의 1의 세월을 바친 주독 대사관을 정년 퇴직한다.
지난 16일 권영민 주독 대사로부터 감사패와 선물을 받는 자리에서 여러 차례 눈시울이 붉어졌던 디체만 박사는 끝내 눈물을 흘리며 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시했다.
"문화와 정서가 다른 한국인과 일을 하며 때론 충돌했으나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외환 위기로 한국 정부가 어려워 현지 채용 한국인 직원들이 해고되거나 월급이 깎이는 어려움을 함께 겪은 뒤에는 더 강한 공동체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디체만 박사는 한국인은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빨리빨리 일하는 방식인 반면 독일인은 사전에 하나하나 머리 속에서 계획한 뒤에야 움직인다면서 문화와 정서가 다른 한국인들과 일하는 것이 처음엔 매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초기엔 왜 그렇게 매사에 회의적이냐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함께 일하다 보니 한국식의 '즉흥'과 독일식 '회의'의 장점을 조화시키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독일인보다 준비성이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일단 일을 해나가면서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고 돌발 상황을 헤치는 능력에선 앞서 있다고 그녀는 평했다.
스페인어-영어 동시통역사 자격증 소지자이자 미국 뉴욕대학 영문학 박사 출신인 디체만 씨의 한국과의 인연은 지난 1972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당시 한국 대사관의 유태환 공보관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그녀는 당초 독일 최고 권위의 언론사인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기자로 일했으나 동료 기자와 사내 부부 1호를 기록한 뒤 독일의 해외홍보기관으로 옮겼다가, 역시 외교관으로 전직한 남편을 따라 간 카이로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6년 후 남편의 새 부임지인 뉴욕의 길거리에서 그녀는 유 공보관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이듬해 남편의 본국 발령으로 다시 독일 수도 본에 온 그녀에게 역시 독일로 전보된 유 공보관이 손을 내밀었다.
후일 해외공보원장까지 지냈으며 지금은 고인인 당시 유 공보관의 요청에 따라 그녀는 1983년 4월부터 독일 민간에 한국을 알리는 최일선에서 일해왔으며, 현재공식 직함은 한국문화홍보원 카운슬러다.
그동안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등 3명의 한국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고, 대사는 7번 바뀌었다.
"군사 독재자였던 전두환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당시 교민과 학생들이 대사관 앞에서 연일 광주 학살 항의 시위를 벌였고, 저는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대피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피를 많이 흘리지 않고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대단한 나라"라면서 평화로운 통일도 이룰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독일어로 된 최초의 한국 관광안내서 '서울'을 펴낸 그녀는 퇴임 후 남편 에카르트 씨와 함께 한국 문화에 관한 책을 쓸 계획이라면서 마침 내년이 '한국의 해'임을 상기시켰다.
법학박사이자 기자와 외교관 생활을 오래 한 뒤 퇴임한 에카르트 씨는 사진 촬영도 프로 수준이며, 여행서적 30권과 사진집 등을 포함해 50권의 저서를 냈다. (베를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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