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저자-시인 이성복씨

입력 2004-12-17 11:09:34

사진 24장만으로 만든 에세이집

시인에게 제주의 '오름'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설까. 경계 없는 대자연의 모습에서 빗겨나 카메라 앵글에 잡힌 흑백의 '오름' 사진에서 또 우리는 무엇을 머리에 떠올릴까. 화산폭발 이후 생겨난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산, 오름에는 언어로 풀어내기 힘든 자연의 힘과 의미가 담겨 있다.

오름을 전문적으로 찍어온 사진작가 고남수씨의 사진, 그저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오름 사진에 말걸기를 시도하는 시인 이성복(52'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씨의 언어가 보태져 사진에세이집 '오름 오르다(사진 고남수'현대문학 펴냄)'로 묶여져 나왔다.

시인은 이 완곡하고 단순한 오름 사진을 보고 강한 끌림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다. 오름의 도형에 말을 거는 일, 즉 사진 속의 오름을 언어라는 이질적 렌즈로 재분석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오름의 형태는 저자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화려한 색깔과 넘쳐나는 의미에서 벗어나니 더 깊은 차원의 의미가 다가오는 것이다.

오름 사진 24장만으로 한 권의 에세이집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저자는 참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오름의 검은 실루엣, 그 하나만으로도 기나 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단순한 만큼 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은 많은 것들을 연상케 한다. 해석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것이다. 이씨는 곡선에서 여인의 등허리를 보기도 하지만 곧 무정형의 슬픔을 느낀다. 그것은 초조한 직선과 완벽주의의 원주가 알지 못하는 부드럽고 느린 지느러미를 해묵은 슬픔처럼 늘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잊혀가는 세월의 그림자와 동시에 희망의 씨앗을 보기도 한다, 마치 엄마의 배를 발길질하는 태아의 거친 숨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시인은 오름에서 큰 것과 작은 것,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의 차별이 종식되는 야생의 세계를 느끼며 행복해 하다가도 그것이 잊혀진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은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다시 한번 경계한다.

"의미를 담지 않은 선(線)은 없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선의 의미'를 저자만의 시각으로 풀어놓고 있다. '내가 본 선의 의미'와 비교하면서 읽어봄직하다.

최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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