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부호의 아들과 평범한 서민 가정 딸 간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는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요"였다. 남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두 사람, 알콩달콩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전기세'수도세 등의 독촉장이 날아드는 현실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데 대한 아내의 대답이었다. 그러고보면 영화 속의 그 말은 연인 뿐 아니라 가족 간에도 가급적 없을수록 좋을 듯하다. 미안한 짓을 했음에도 입 꾹 다무는 철면피가 되라는 게 아니라 피를 토하듯 하는 심정으로, 미안하다는 말 밖엔 다른 말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일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미안하다는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는 애달픈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며칠 전 팔순 노부부의 동반자살 기도는 효자 아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경찰청 자료에는 지난 해 61세 이상 노인 자살자가 3천653명으로 2000년(2천329명)보다 56.8%나 늘었다. 급속한 고령화 사회 속에서 "자식에게 부담 주기 미안해" 세상을 뜨는 노인들도 적지 않음을 말해준다.
○...반면 부모에게 짐되는 게 미안해 목숨을 끊는 자식들도 적지 않다. 그저께, 부모집에 얹혀살던 한 30대 남자가 "장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실직으로, 사업 실패로 부모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자식들이 부모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 채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사례다.
○...또 실종됐던 딸의 유골 앞에서 "미안하다. 미안해. 엄마가 못 지켜줘서"라며 울부짖는 화성 실종 여대생 어머니의 오열은 성폭력과 여성 실종사건이 잇따르는 우리 사회의 음습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딸 가진 부모들이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 세태가 안타깝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치명적인 슬픔'이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에 묻어야만 하나. 부모와 자식이 피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지도자가 우리에겐 정녕 없을 것인가.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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