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어느 날 회사 임원진과 핵심 연구원을 모아놓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매출 200억 원에 50억 원의 이익을 내는 A회사와 매출 1천억 원에 50억 원의 이익을 내는 B회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회사인가? 대략 10중 7은 탄탄한 A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답하고, 3정도가 B회사로 답했다.
나의 답은 이익은 낮더라도 매출액이 큰 B회사였다.
물론 정답은 없다.
경영자의 가치관에 따라 정답은 변한다.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당면한 현실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B회사를 정답이라 한 것은 B회사에 더 미래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1등과 1등을 위협하는 2등만 생존할 수 있는 냉혹한 디지털 생태계의 본질을 상기시키면서 나름대로 구상하고 있던 애플 대응 프로젝트에 대한 공감대를 얻기 위함이었다.
대한민국은 70년대 이후 고도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부실기업 양산과 기업 윤리불감증과 같은 부작용과 폐해를 겪었다.
그러면서 어느 사이엔가 우리 마음속에 외형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방만한 경영과 연계짓고 죄악시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기업의 외형적 성장 추구는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외형 성장이 성공적으로 잘 관리되면 시장의 지배력을 얻으면서 이익이 늘어나고 그 이익은 다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로 가게 되지만 성장우선경영이 실패하면 재기할 수 없는 부실의 벼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이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는 안정 위주 경영이 영원한 생존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그 기업이 당면한 기업생태계의 환경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이 땅에서는 성장과 분배, 진보와 보수, 개혁과 안정 등 예전에는 학자나 책임있는 정책 입안자들이나 연구하는 것으로 여겼던 이 어려운 용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일상 속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현란한 논리와 언어로 무장된 이 형이상학적 개념을 일상생활 속으로 받아들이며 미처 준비되지 않은 우리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과 사고의 혼란을 일으킨다.
그것이 5년 뒤 10년 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서로들 주장하면서 혼란은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미래에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대한민국의 비전은 끊임없이 변해왔다.
잘 사는 나라에서 무역대국으로, 복지국가로, 다시 IT강국으로, 동북아 물류 중심으로 개념적 변천을 거듭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소득 이만 달러라는 화두를 기점으로 우리의 당면한 목표는 국민소득 이만 달러라는 가장 구체적인 모습으로 설정되었다.
매일매일 신문에서 거리에서 TV 좌담회에서 심지어 술자리의 농담에서조차 소득 이만 달러란 단어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듣고 본다.
역대 대한민국의 비전 중에서 어느 것이든 이만큼 모든 사람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킨 적이 있었던가?
성장과 분배, 개혁과 안정은 모두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은 것이다.
결국 어느 한 쪽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단지 수순의 문제이며 그 수순은 모두가 공감하는 소득 이만 달러로의 최단거리를 선택하면 될 일이다.
그 선택이 틀린 것이라면 차라리 실패를 빨리 경험하는 것이 지루한 논쟁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2004년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으로 힘든 한 해였을 것이다.
테러· 고유가· 중국의 긴축· 달러 약세 등. 이 중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한국 경제를 침체시키고 우리 주식 시장을 강타할 수 있는데도 이 모든 악재를 올 한 해에 몽땅 떠안아 버렸다.
그러면 내년에는 더 나아질까?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진짜 화두는 그 어려운 철학적 용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 몇 명의 신입 연구원 모집에 600배의 인원이 응시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의 참담한 가슴에 희망과 비전을 주기 위한 무언가를 빨리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양덕준 (주)레인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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