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입력 2004-12-15 08:56:07

언 땅은 아주 조금씩 살을 깎아

비명을 일으켜 세운다

비명 소리가 달려가다 희뜩한

눈발과 잠시 몸을 섞는다

벌판은 뜨거운 숨소리를 숨겨 놓고

지상의 사랑은 앙상하게 남아

깊은 소리로 운다

겨울 햇살 빠르게 벌판을 건너지르고

바람 속에 영혼을 흔드는

마른 쑥대궁과 억새풀들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있다

그 속에 내가 있다

김윤배 '겨울 벌판에서'

지상의 사랑은 언 땅 위에 있어 앙상하고 벌판의 속마음은 대지의 여신이 숨어 있어 뜨겁다.

비명 소리는 언 땅 위에 있어 희뜩한 눈발과 몸을 섞고 쑥대궁과 억새풀들은 대지에 뿌리내려 무너지지 않는다.

깊은 소리로 우는 사랑은 이미 뜨거운 숨소리이니 비명과 억새풀은 남남이 아니다.

그날 팔공산 동봉이 그와 같았다.

서릿발이 비명을 일으켜 세웠고 비명소리 달려가다 가지 끝에 눈꽃으로 피어 있었다.

마른 쑥대궁 속에 내가 있었다.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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