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황혼 독립

입력 2004-12-14 13:20:27

3남1녀를 둔 73세 노인이 며느리 생일을 챙기지 않은 딸에게 전화를 걸어 올케언니 생일도 모르냐며 "죽여 버리겠다"는 등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했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60대 부인이 "자식에게 욕을 할 수 있느냐"며 항의를 하자 노인은 전화기로 부인을 때려 전치 6주의 상처를 입혔고, 부인은 노인을 경찰에 신고했다. 부인은 옛날에도 남편의 폭행으로 중상을 입은 적이 있다고 했다.

○...경찰은 노인을 긴급 체포하고 '부인 주변 100m 이내 접근금지' 임시조치를 신청, 법원의 결정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담당 판사는 고심을 했다고 전한다. 이들 노부부는 자녀들과 떨어져 따로 전셋집에서 살고 있었다. 접근 금지는 노인을 집밖으로 쫓아내는 것이기에 노인의 갈 곳이 문제였다. 자녀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의 주벽과 행패를 이유로 모시고 살기를 꺼렸다.

○...담당 판사가 "자녀가 모시지 않으면 아버지를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수감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고 자녀들은 "접근 금지 조치가 내려져 집에서 쫓겨날 경우 돈을 모아 아버지의 거처를 따로 마련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노인은 자식과 따로 살다, 이젠 부인과도 따로 살 형편이 됐다. 같이 살아보지 않은 한 남의 속사정을 알 수 없지만, 일부 보도대로라면 노인은 폭력 가장으로 인과응보를 당한 것이다.

○...국토연구원이 전국의 55세 이상 1천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자녀와 따로 살겠다'는 응답이 59.9%, '노인 전용 시설에 입주하겠다'는 사람이 10.2%로 나타났다. 전체의 70.1%가 노년을 자녀와 함께 살지 않겠다며 '황혼 독립'을 희망한 것이다. 현재 따로 사는 노인가구 43.9%보다 훨씬 높다. 이유야 어떻든 머잖아 자녀와 함께 사는 노인을 보기 어렵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황혼 독립'이 '노부부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폭력 노인' 경우처럼 '혼자 독립'으로 비화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 요즘처럼 계산 잘 맞춰서 결혼하는 세태를 보면 늙어서 계산이 어긋날 경우가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가장으로 낙인찍혀 갈 곳을 잃은 70대 노인은 6.25때 혈혈단신 월남해서 외로움과 싸우며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을 키워낸, 한때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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