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짱'주부 이영미의 요리세상-베트남 쌈

입력 2004-12-14 11:44:49

꼭 20년 전 겨울, 이맘 때 나는 밤잠을 설치며 뜨개질을 했었다. 검은 색 실에 흰색 실이 조금 섞인 털실로 남자 스웨터를 뜨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웠었다. 한방을 쓴다는 이유로 밤새 켜 놓은 전등때문에 본의 아니게 밤잠을 설쳐야하셨던 할머니는 뜨개질하는 나를 지켜보시며 몇 번이나 물으셨다. "그 스웨터 입을 총각이 그리도 좋으냐?" 그 때마다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었다. "네, 진짜 진짜 좋아요."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가 아닌 남자를 위해 뜨개질을 했고 행복했었다.

꼬박 나흘이 걸려 만든 스웨터를 들고 경북대 도서관으로 걸어가는데 정말 발이 땅에 닿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남자는 도서관에 들어 갔다하면 책 읽는데 정신이 팔려 나를 한 두 시간 기다리게 하는 것은 보통이었건만 그것마저도 멋지게 보였었다. '자상하고 나 보다 똑똑한 남자'인 나의 이상형에 딱 맞는 이 세상 단 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 날도 졸리는 눈을 비비며, 연신 하품을 해대며 그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헐렁한 옷에 머쓱해 하는 내게 고맙다며 짓던 그 미소는 나의 심장을 멎게 했었다. 다음 해도 또 그 다음 해도 나의 겨울은 그 남자의 생일을 위한 뜨개질로 시작되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생신 선물 뭐 준비하셨어요?"

"선물? 엄마가 선물이야. 머리에 리본 머리띠 하고 있을까? 나의 존재 자체가 아버지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지."

"이런 이런, 병이 심하시군요.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셔야 할 텐데요."

남편과 마주 앉아 돌돌 말아 고기 얹고 야채 얹어 쌈 싸서 소스에 콕콕 찍어 건네주니 기왕이면 먹여달란다. 우린 어쩔 수 없는 닭살 부부.

"생일 선물 뭐야?"

"선물은 무슨 선물. 없어요."

"뭐? 남편 생일 선물도 없단 말이야."

"잡아 놓은 물고기에 밥 주는 거 봤수?"

나의 대표 ID 'rhea84'. 1984년에 선물 받은 나의 또 하나의 이름 레아(rhea)라는 의미이다. 내게 있어 그가 삶의 이유이듯 그에게도 그런 존재이기를. 그래서 내가 그대로 선물이기를.

칼럼니스트'경북여정보고 교사 rhea84@hanmail.net

◇재료=라이스페이퍼 16장, 돼지고기 갈비살 400g, 당근 5㎝ 1토막, 팽이버섯 2봉지, 오이 1개, 실파 50g, 겨자소스(겨자가루 1/2큰술, 설탕과 식초 1과 1/2큰술, 소금 약간), 통마늘 5개, 통후추 10알, 커피 1/2작은술, 청주 1작은술, 월계수 잎 2장, 대파 1대, 생강 10g.

◇만들기=①통마늘, 통후추, 커피, 청주, 월계수 잎, 대파 생강을 넣고 돼지고기를 삶은 뒤 한 입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썬다. ②오이는 5㎝ 정도 길이로 자른 뒤 껍질 부분을 둥글게 깎은 뒤 채 친다. ③당근도 채 치고, 팽이버섯은 밑동을 자르고 실파도 5㎝ 정도 길이로 자른다. ④라이스페이퍼는 따뜻한 물에 한 장씩 넣어 부드러워지면 꺼내 종이타월로 물기를 제거한 뒤 접시에 따로 준비한다. ⑤큰 접시에 삶은 돼지고기 썬 것을 담고 야채를 적당한 양으로 나누어 접시 둘레에 담는다. ⑥라이스페이퍼에 고기와 각종 야채를 조금씩 놓고 돌돌 말아 싼 뒤 겨자소스에 찍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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