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다음 제시문들을 참조하여'지속 가능한 발전'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관점에서 환경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문제 해결 방향을 모색하는 자신의 주장을 적절한 논거를 들어 논술하시오. (띄어쓰기 포함 1,800자 ±100자)
(가) 우리가 환경 문제라고 하면 흔히 환경 오염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환경 문제를 환경 요소 간의 질서가 파괴됨으로써 인간에게 피해를 미치는 문제로 이해하면 최근에 제기되는 사회적 쟁점의 많은 부분이 환경 문제에 포함된다. 즉, 환경 오염을 비롯하여 인구 문제, 식량 문제, 자원 문제와 지구 환경 문제인 산성비,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 등이 모두 해당된다. 이러한 각각의 환경 문제는 독립된 문제가 아니라 깊은 상호 관계성을 맺고 있는 문제 복합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서 산업 혁명 이후 물질적 풍요와 의학 발달이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오고 많은 인구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식량 문제, 자원 문제, 환경 오염 문제 등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은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상승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인과 관계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고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또 환경 문제와 같이 개별 문제들 간의 상호 관련성이 큰 경우에 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전체적인 문제도 적절하게 해결된다고 할 수 없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체 체계 내에서 각 문제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 관련성을 이해하여 개별 문제의 변화가 다른 문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와 전체 변화가 함께 파악되어야 한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과 정책 개발에 앞서 가치관의 변화, 즉 새로운 환경 윤리가 우선 정립되어야 한다. 환경 윤리는 인간과 주변 환경(자연) 사이의 관계를 대상으로 한다. 즉, 인간과 자연 간의 균형 파괴에 따라 환경 문제가 발생하며. 이를 인간의 시각에서 수정'보호'보존하기 위하여 필요한 원칙이 환경 윤리이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는 시각에 따라 환경 윤리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인간과 자연의 지위를 재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중략)
인간 중심 위주의 개발에 따른 결과로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복잡한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피해 범위가 전지구적으로 확대되자 새로운 가치관에 기초한 개발 논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92년에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는 환경 보존과 경제 개발의 조화 방안으로 환경 윤리 개념을 도입한'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Environmental Sound Sustainable Development; ESSD)'을 제시하였다. 개발은 환경이 수용 가능한 능력 범위 안에서, 또한 현재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까지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함을 밝히고 있다. 즉, 미래 인류의 필요에 충분할 만큼의 공간과 자연을 남겨 주어야 하며, 미래 인류가 살아가는 데 불이익을 초래할 어떤 것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현세대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 최영길 외, '인간과 환경'에서
(나) 최근 근본 생태학(Deep Ecology)은 주로 네스와 드볼, 세션의 저작에서 발전된 환경 문제에 대한 접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통용된다.'근본적(deep)'과 '피상적(shallow)'의 구분은 네스에 의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는 피상적 생태 운동을'오염과 자원 고갈에 대한 투쟁'에만 관심을 갖는 운동이며, 그 목표가 '선진국 국민의 건강과 풍요'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근본 생태학은'환경 안에 있는 인간'이란 관점을 거부하고 전체적이고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난 접근에 동조해서 '관계적이고, 전체 장(total-field)'의 관점을 취한다.
근본 생태주의자는 현재의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사회적 관행을 바꾸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기본적인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생태 의식을 계발하는 것이고, '인간과 식물, 동물, 지구의 통일성'을 인정하는'생태적, 철학적, 영성적 접근'이다.(중략)
근본 생태학이 주장하는 궁극적인 규범은 두 가지이다. 이것은 '자기 실현(Self-realization)'과'생명 중심적 평등(biocentric equality)'원리이다."참된 자기 실현이라는 규범은 쾌락적 기쁨을 추구하는 고립된 자아로 정의되는 근대 서구적 자아를 넘어선다. 우리가 고립되고 협소한 경쟁적 자아를 보지 않고 가족과 친구,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과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근본 생태학은 자아의 더 큰 성숙과 성장을 요구하는데, 인간을 넘어서 모든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추구한다(자기 실현).""생명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살고 번성할 평등한 권리를 지니며, 자기 나름의 삶을 전개하고 참된 자아의 맥락에서 자기를 실현할 평등한 권리가 있다. 모든 유기체와 생태권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상호 연관된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그 본질적 가치가 동등하다(생명 중심적 평등)."
근본 생태학의 실천적 함의는 무엇인가? 첫째, 이들은'지구를 부드럽게 밟는'생활 양식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하고, 기술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자급자족적인 탈중심적인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 공동체는 전통 정치 조직과 달리 생명권(bioregion)에 맞게 지역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그리고 생활 양식은 최소한의 소비적 물질 욕구만 인정되는 간소한 것이어야 한다. 물질적 욕망도 인간 사회의 인위적 산물이다. 그리고 지구와 다른 종에 가능한 한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살아야한다. 지역 공동체는 주위 환경과 조화롭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것은'자연의 지배'가 아니라'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공동체 이념, 곧'에코토피아(ecotopia)'의 이념이다.
- 데자르뎅, '환경 윤리'에서
(다) 오늘날 우리들은 터무니없이 엄청난 규모의 생태 위기에 둘러싸여 있다. 이 위기는 외견상 지구를 무자비하게 오염시키고 착취한 결과로 등장한 것이다. 우리는 이 위기의 사회적 원인이 경쟁적인 시장 이데올로기에 있음을 알고 있다. 이것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의 세계를 상품화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가격표를 부착한 채 이윤과 경제 팽창을 위해 팔려질 상품으로 그 의미를 축소시켰다.
이런 기술과 자연 지배는 인간의 자유란 이름으로 인간 지배를 용서한다. 인간들은 위계 체계, 계급들, 국가 제도, 성별, 인종 구분으로 파편화되었다. 이것은 민족주의적인 증오, 제국주의적 모험, 전세계적인 지배 철학을 촉진시켰다. 이 지배 철학은 복종과 종속을 질서와 동일시하고 있다.
사회 생태학은 마치 사회 생물학처럼 사회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해체하지 않고, 신비적인 속성을 자연에 첨가하여 합리적인 통찰력 너머에 자연을 두지 않는다. 사회 생태학은 인간성 자체와 인간의 마음을 자연이란 맥락에 포함시키고 자연사적인 관점에서 이를 탐구한다, 이는 사고와 자연, 주체와 객체, 마음과 육체, 사회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이에 마련된 균열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생명체들은 움직이고, 상호 작용하며, 자신의 자손을 생산하고, 다른 유기체들이나 종들과 관계 맺으므로 상황적, 맥락적, 환경적인 존재이다. 생명은 자신이 진화하는 방향에서 자기 주도적인(self-directive) 존재이지 유기적, 무기적 세계에 수동적으로 작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은 생태계의 안정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다산성, 혁신성, 더 새롭고 복잡한 생명체와 생물 관계를 창조하는 근거가 된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란 생태학적 원칙은 충분히 조정된 사회 원칙으로 바뀔 수 있다. 사회는 인격성, 다양한 동기와 활동, 풍부한 경험, 다양한 직업 유형에 기반을 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아가 사회는 이 사람들로 짜여진 호혜적인 네트워크(그물망)이고, 이로써 이 원리의 참됨과 사회적인 자기 실현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러한 생태계의 다양성을 인간이 살기 좋은 규모로 분권화된 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회적인 다양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유추적인 합리화에 불과한가?(중략)
오늘날에는 자연을 무자비하고 경쟁적인 시장 이미지로 정의하기도 하고, 창조적이고 다산적인 생물 공동체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사고와 감수성의 길은 인간 미래에 대한 서로 대비되는 가정들과 방향들에서 나온 것이다. 그 하나의 방향은 궁극적으로 전체주의적이고 반(反) 자연주의적인 사회를 종착역으로 삼는다. 이 사회에서는 권력이 중앙 집중화되어 있고, 국가 개입주의적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으며, 기술 관료적이고 조합주의적이며 억압적이다.
다른 하나의 방향은 자유를 극대화하고 생태적인 사회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사회에서는 권력이 분산되어 있으며, 국가가 없고, 예술적이며, 집산주의적이고, 고도로 해방 지향적이다. 우리가 자연 세계에 대해서 견지한 관점은 그 동안 우리가 발전시켜 온 사회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반영한 것이다. 이 이미지는 자연보다는 문화에 자율성과 우위성을 부여하고 이를 강조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새로운 감수성은 위계적이지 않은 사회에서 경쟁이 아니라 상보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새로운 공동체에 바탕을 둔다. 이 새로운 공동체는 그 규모가 인간적인 차원에서 결정되고, 자신이 속해 있는 생태계에 적응하도록 맞추어지며, 공공 영역을 분권화시키고 자기 관리적으로 작용하게 함으로써 이 영역을 새로운 민주적인 사회 관리 유형들과 새로운 개인들의 개성에 개방한다.
- 북친, '사회 생태론이란 무엇인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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