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가게 초토화' 지자체는 '뒷짐'

입력 2004-12-08 11:39:03

전국망을 갖춘 대형 할인점들이 10년 가까이 동네가게까지 초토화하는 동안 대구·경북의 각급 지자체와 경제계는 '뒷짐'으로 일관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각급 지자체들은 다른 시도들이 대형 할인점들의 무차별 공세에 맞서 재래상권 보호장치를 강구하는 것과 달리 '시장 논리'에만 내맡긴 채 사실상 무제한 허용을 해온 셈이란 것이다.

대구 경북은 97년 유통시장을 전면 개방한 유통산업발전법 발효 이후 역외 대형 할인점들의 신규 출점을 '정부가 정한 법대로', '소비자가 원한다'며 100% 허용해 왔다.

이에 비해 대전·광주·전북·충북·강원 등 대다수 지자체들은 경제계, 시민단체 등과 힘을 합쳐 2007년까지 조례 제정을 통한 대형 할인점 도심 진입 원천 봉쇄(대전), 모든 대형 할인점 상업지역만 출점토록 조례 개정(청주), 조례 개정을 통한 준공업지역 대형할인점 진출 금지(강릉, 원주) 등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

대구의 경우 대형 할인점 도심 진출의 관건인 교통영향평가도 사실상 '무사통과'다.

대구는 정부 지침대로 대형 할인점들이 출점 때 제출하는 교통영향평가서에서 교통량 증가량을 향후 1년과 5년 두 차례만 예측도록 했지만 대전의 경우는 구시가지는 10년, 신시가지는 15년까지 예측도록 평가 기준을 강화했다.

대구시는 할인점에 대한 교통영향평가 재평가 역시 '의무 규정'이 아니라며 손을 놓고 있다.

광주의 경우 지역 할인점 첫 등장 이후 5년째인 2002년 모든 대형할인점을 대상으로 재평가를 실시, 시정 조치를 요구한 반면 지금까지 19개 대형 할인점이 들어선 대구는 단 한 차례도 재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다.

또 대형할인점이 지역 사회와 마찰을 빚는 사례가 급증하자 정부는 올해부터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을 개정해 입지 선정, 교통 혼잡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유통분쟁조정위원회를 열 수 있도록 했지만 경북은 단 한 차례도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지 않았다.

안동경제살리기협의회 김윤한 위원장은 "지난달 개점한 이마트 안동점 경우 올 6월에야 준공 사실이 공개돼 행정당국에 분쟁 조정을 신청할 기회도 없었다"고 했다.

포항의 대형 할인점 건축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김인엽 위원장은 "도심의 할인점 설립부지에 대해 시에 정보공개를 신청했지만 시는 기업 비밀상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만 거듭 밝혔다"고 말했다.

경제계 역시 대형할인점의 유통시장 잠식을 외면하고 있다.

지역 한 경제단체는 지난 달 대형 할인점의 도심 내 신규 출점을 제한하는 건의서를 만들어 대구시와 8개 구·군, 광역 및 기초의회에 보내려다 해당 할인점들이 '회원사'라는 이유로 건의서 제출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정을 보다 못한 한 유통업체는 최근 역외 대형 할인점들의 무분별한 대구 도심 출점을 제한해달라는 건의문을 만들어 대구시와 주요 경제단체에 보내기도 했다.

대구경실련 조광현 사무국장은 "상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도 보장돼야 하지만 최소한의 소매시장이 돌아갈 수 있는 사회적 규제, 정책 조정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했다.

동아유통센터 이수원 과장은 "매출이익의 일정부분을 지역에 환원하거나 이를 건축허가 조건으로 하는 조례 제정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이종규 이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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