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사형제도의 폐지를 기대한다.

입력 2004-12-08 09:15:06

지난 달 사법개혁위원회는 현행 형벌체계의 합리적 개선방안으로 감형 또는 가석방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종신형'의 신설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여 사형제 폐지와 맞물려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그 직후 연쇄살인혐의의 유영철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사형을 구형하였고 이어 지난 2일 경찰관 두 명을 살해한 이학만의 1심 재판부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사형존폐에 관한 논의와 무관하게 사형이 형벌로써 현실적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흉악한 범죄자는 국가형벌권의 행사에 의하여 엄중하게 처벌되어야 하고 이들로부터 사회도 보호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이루고자 또다른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하에서 그 헌법을 존립의 근거로 하는 국가권력이 형사사법절차를 통하여 인감존엄의 근원인 생명을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 헌법을 위반하는 것과 같다.

비록 우리 헌법재판소는 1996년, 재판관 7대 2의 다수의견으로 사형이 합헌이라고 판단하였지만 형벌권의 행사로서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일종의 제도적 살인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음을 명백히 하였다.

그럼에도 우리사회 일부 국민 사이에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인간 이하의 짐승'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어떠한 법적 권리의 인정이나 사회적 비용의 지출도 반대하며 범죄에 상응한 보복을 바라는 법적 감정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영철사건 이후 이러한 감정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들도 여전히 '인간'이고 그 생명 역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형은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함으로써 교화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포기한다.

형벌의 목적은 더 이상 응보(應報)일 수 없으며 범죄자의 교화, 개선에 있다.

흉악한 범죄를 범하여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국가는 이들에 대한 개선가능성을 긍정하여야 하고 교화할 의무가 있다.

또한 사형으로서 흉악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사형을 폐지한 많은 나라에서 살인 등 흉악범죄 발생률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조사결과는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사형을 폐지한다고 해서 흉악범죄가 날뛸 것이라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나아가 사형제도는 오판의 가능성에서 오는 근본적 문제점을 가진다.

인간이 하는 재판에서 오판을 절대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현실에서 집행을 마친 사형수에 대하여 후일 오판임이 밝혀지더라도 침해된 생명을 복원시킬 수 없다.

특히 오랜 기간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한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사형당한 이들 중 많은 경우 범죄에 해당하지 않거나 경미한 사안에 불과하였음이 최근에 밝혀지고 있다.

정치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법적 평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될 수 있음에도 범행당시의 법적 판단으로 사형을 선고하고 성급하게 집행하는 것은 재평가의 기회를 영원히 박탈해 버리는 위험을 내재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우리도 사형을 폐지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2003년도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사실상의 사형폐지국(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나라) 21개국을 포함하여 모두 110여 개국이 이미 사형을 폐지하였다고 한다.

사형제 폐지가 이처럼 세계적 추세임에도 여전히 우리의 국민여론은 존치론이 다소 우세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는 유영철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범행 당시 또는 범행 직후의 보도를 통하여 범죄 및 범죄인의 극악성만 부각되고 범죄의 사회적 원인, 교화과정, 사형수와 가족의 고통, 집행의 잔혹함, 그리고 사형을 선고한 법관과 집행에 관련된 자들에게 가해지는 양심과 인간존엄성의 침해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되어진다.

얼마 전 사형폐지법안이 국회의원 150여명의 서명으로 국회에 발의되었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폐지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끔찍한 살인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사형존치론자가 되고 처연한 사형장면을 본 사람은 폐지론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제 눈과 귀를 조금만 돌려보자. 그러면 유영철의 최후 진술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는 날까지 뉘우치겠습니다.

"

송해익 변호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