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달빛 마을

입력 2004-12-07 13:33:40

'내 고향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가면 내닫는 조그만 마을이다.

산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실레라 부른다.

'

스물아홉의 짧은 생애에 개성적인 작품을 남긴 천재 작가 김유정은 자신의 고향을 질탕한 토속어를 생략한 채 이렇게 담백하게 묘사했다.

산골 마을 실레로 들어서는 간이역 신남역이 이달 초하루부터 '김유정 역'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김유정 문학마을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김유정 역'에서 내려 길을 물어야 한다.

김유정 소설 인물들과 같은 사투리와 희화적인 표정으로 묻는다면 제격일 것이다.

최근 지역마다 서로 다투어 문인 마을을 조성하여 문학적 상상력을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문화 사업이 재정 확보를 위한 지역 축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 지역축제가 먹고 놀기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 축제에 정신적 향기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적으로 축제는 특정 기간에 한정된 집단적 행사이다.

다같이 둘러앉아 잉걸불을 일시에 지피는 축제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각기 제 가슴에 스스로 불을 지피어 정신을 달아오르게 하는, 내면적 축제도 중요하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지역마다 조성하는 문인 마을이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봅니다/ (…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이호우가 노래하며 거닐던 낙동강변을 따라 '달빛 마을'을 기획하는 것도 괜찮은 구상일 수 있다.

달밤은 세속의 온갖 미움과 더러움을 사랑으로 정화하는 성스런 공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신마저 물질로 계산되는 시대에 영혼을 맑게 씻는 이런 시인 마을은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옥타비오 파스에 의한다면 시는 악마를 쫓는 주문이고 맹세이며 마법이다.

그런데 대구에는 식민지 시대를 신지핀 듯이 내달으며 치열하게 시대와 맞선 '이상화의 문학관'이 없다.

춘천의 작은 산골 마을 '김유정 문학 마을'은 대구 문화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 되어야 할 것이다.조두섭 시인·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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