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삶-(12)캄보디아/앙코르 톰(Angkor Thom)

입력 2004-12-06 16:18:01

여러 개의 유적 모여있는 '거대한 도시'

몸이 무겁다. 어제 한나절을 꼬박 차에 시달린 데다 밤새 시끄럽게 돌아가던 팬 소리에 잠을 설친 탓이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담배를 빼어 무니 달아나는 잠 끝에 입맛이 쓰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가난한 여행자의 숙소에 욕조가 있을 리 만무하다. 더구나 하루에 700달러짜리 특급호텔이 있는 시엠립에서 겨우 3달러짜리 숙소에서 목욕이라니 싶어 서둘러 사진기를 챙긴다.

앙코르를 돌아보는 방법은 시엠립에 있는 대부분 숙소의 게시판에 잘 설명되어 있을 뿐 아니라 관람권에도 잘 나타나 있다. 1일 관람권에 20달러, 3일 관람권에 40달러, 1주일 관람권을 60달러를 받는데 보통의 여행자들은 3일 관람권을 많이 끊는다. 그것은 대체로 앙코르를 3가지 구역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편리하다는 생각에서다. 첫째 날은 앙코르 톰과 가까운 지역을, 둘째 날은 앙코르 와트와 그 외의 지역을, 셋째 날은 조금 떨어진 지역들을 둘러보는 식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다 마찬가지이지만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보게 된다면 단 하루를 본다 할지라도 일주일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앙코르 톰으로 향한다. 매표소에서 즉석 증명사진을 코팅해서 만들어주는 입장권은 한 때 관리소장이 태국에서 입장권을 무더기로 인쇄해 부정을 저지른 후 바뀐 것이다. 캄보디아 외화 수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앙코르 수입이고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나 이 수입이 캄보디아 사람들의 고단함을 더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부정을 저질렀던 과거의 관리소장이나 현 정권의 책임자가 다른 얼굴이라는 확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매표소를 지나자 오른 쪽에 해자(垓子: 성(城) 밖으로 둘러서 판 못)로 둘러싸인 앙코르 와트를 지난다.

◇ 바이욘은 힌두교 아닌 불교 색채

앙코르 유적 중에서 가장 크고 역대 캄보디아 국기에 그 탑 모양이 새겨질 정도로 앙코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지만 아껴둔 내일의 몫이다. '거대한 도시'라는 뜻의 앙코르 톰의 남문 앞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성 주위로 해자를 파서 그 위에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문을 내고 다시 출정과 승전(勝戰)을 위한 한 개의 문을 포함해 모두 다섯 개의 문을 가진 앙코르 톰의 시작은 남문에 있다. 해자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는 힌두교의 가장 중요한 창조신화 "유해교반(乳海攪拌)이 형상화되어 있다. 신화는 불로장생의 영약을 얻기 위해 신과 악마가 머리가 여러 개 달린 뱀, 바수키의 몸통을 잡고 우유의 바다를 휘젓는 것으로 시작한다. 1천년 동안 우유의 바다에서 여러 신들이 탄생하고 마침내 영약(amrita, 감로수)을 얻어 신들만이 마셨다는 내용은 앙코르 와트 1층 부조에 잘 묘사되어 있다.

다리의 난간은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몸통을 부여잡고 있는 신과 악마의 형상이 좌우로 배열되어 있다. 머리의 모양과 얼굴을 다른 형상으로 표현했다 하더라도 신과 악마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심성에 선과 악이 존재하듯이 신과 악마도 하나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리 아래 물은 거의 말라 있다. 남문 위에는 네 개의 거대한 얼굴이 우유의 바다를 휘젓고 있는 신과 악마를 내려다보고 있다. 말라버린 물처럼 그 얼굴도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앙코르 톰은 다른 유적들이 개별적인 사원인데 반해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여러 개의 유적이 모여 있는 성이다.

한 때 백만 명이 거주했다고 하는 이 성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유적은 바이욘(Bayon) 사원, 바푸온(Baphuon) 사원, 피미아나까스(Phimeanakas), 코끼리 테라스(Terrace of the Elephant), 문둥이왕의 테라스(Leper King's Terrace) 등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유적은 바이욘인데 앙코르 와트와 더불어 앙코르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의 많은 사원들이 힌두교 사원인데 비해 불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그것은 캄보디아에 최초로 불교를 들여온 자야바르만 7세가 왕족이 아닌 귀족 출신으로써 왕이 된 연유에 기인한다.

그는 카스트를 부정한 불교를 채택함으로써 자신의 왕위를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로 칭하며 백성을 위한 시설과 사원을 짓는데 힘썼다. 그 결과물의 결정체인 바이욘 사원은 54개의 탑으로 이루어진 사면상(四面像)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 돌계단 1시간 넘게 오르며 소원 빌어

허물어진 동쪽 입구를 따라 바이욘으로 들어간다. 시계방향으로 당시의 생활상과 위대한 왕의 전투장면이 새겨진 회랑의 부조가 여행자를 맞는다. 새를 잡는 장면, 닭싸움을 시키는 장면, 아이를 낳는 장면까지 역사의 주인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인간이 없는 신이 어찌 존재할 수 있으랴 싶다. 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부 회랑을 지나 3층으로 오르자 거대한 사면상들이 근엄하게 다가온다.

"관음보살의 얼굴이라고 하기도 하고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 하기도 해요." 가이드는 관광객들에게 설명을 한다. 문득 팔공산 갓바위가 떠오른다. 학자들은 갓바위 부처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이 갓이 아니라 탑이며, 부처의 모습도 약사여래불이 아니라 석가모니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깎아지른 돌계단을 1시간 넘게 오르는 불자들에게는 학술적 의미보다 부처를 위해 모진 비바람을 피할 갓을 씌운 석공의 마음이 더 가깝다.

소원을 빌며 오르는 그 길의 끝에 석가모니불이 약사여래불이 된다한들 중생에 대한 부처의 마음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관음보살이든, 자야바르만 7세든 보고 믿는 이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두툼한 입술과 뭉툭한 코가 세련되지 못하다고 해서 관음보살이 되지 못할 리 없고 나병환자였다는 왕이 관음보살을 자칭한다고 해서 불쾌해 할 필요도 없다. 힌두교 사원으로 알려지다가 1925년 벽에 새겨진 기록을 통해 불교 사원이 된 바이욘의 사면상은 어느 누구의 얼굴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이기도 하다.

전쟁의 상처를 복구 중인 바푸온 사원은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 동강난 돌 더미에 페인트로 새겨진 번호가 슬픈 기억을 잊게 해줄 수 있을지, 왕가의 혈통이 뱀의 정령에 있다는 전설을 보여주는 피미아나까스에 오른다. 매일 밤 왕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뱀의 정령이 변한 여자와 먼저 동침을 해야만 했다는 이야기는 서글프다. 죽지 않기 위해서 하는 섹스가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그가 설령 왕이라 할지라도….

왕이 군대의 사열을 받던 코끼리 테라스는 300m가 넘는다. 그가 중앙계단에 서서 승리의 문을 통해 개선하는 군대의 사열을 받을 때 앙코르 제국은 빛났으리라! 하지만 그 빛나는 길 옆에 또 다른 문둥이 왕의 테라스를 세운 이유가 무엇일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승리의 뒤에 숨겨진 수많은 주검을 기리고 병을 앓고 있는 자신에게 닥쳐 올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오른 쪽 무릎을 세운 복제품 동상에 나병의 흔적이 역력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왕의 모습이라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죽음의 신을 상징한 것일 때,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 테라스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 북한처녀 '동무'호칭에 동포애 뭉클

넓은 대로를 따라 걷는다. 전쟁에 나가던 병사들이 걷던 길이다. 이 길을 걸어 나가 이 길을 통해서 걸어 들어올 때 승리의 문은 열려 있었을 것이다. 바이욘 사원의 회랑에 새겨져 있던 병사들의 처절했던 전투 뒤에 남아 있던 가족들의 애절한 통곡이 들려오는 듯하다. 인간의 역사에 전쟁은 승리한 자들만의 역사일지 모른다.

걷는데 벌써 지쳐버린 한국 여행자들과 평양 냉면집으로 향한다. 오래전부터 북한과 동맹을 유지해온 캄보디아에 평양냉면집은 그다지 낯설지는 않다, 다만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이 왕정을 인정하고, 한 때 자신을 배척했던 시하누크 국왕을 받아들인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듯 외교란 국익을 위해서라면 이념도 적도 구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10달러나 하는 냉면이 아니라 된장찌개를 시키자 종업원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릇 3일치 방세가 넘는 1끼 밥값을 지불하기에는 가난한 여행자의 동포애(?)가 부족함에 틀림이 없다. 식사 중에 갑자기 종업원들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손님들 모두 박수를 치며 흥겨워 하지만 괜한 거리감에 가슴이 아프다. 동포애를 밀어낸 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거리감이다.

냉면집 맞은편에 "부동산 매매"라는 한글 간판이 부끄러움을 잊은 채 커다랗게 서 있다. 아무런 스스럼없이 동무라고 부르며 활짝 웃던 북한 처녀들이 이국의 땅에서조차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남한 동포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얼굴이 달아오른다.

사진: 바이욘 사원 사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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