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은 1866년(고종3) 12월 6일 당백전(當百錢)의 통용방침을 전국에 통보했다. 왕실의 권위 회복을 위해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경복궁 중건을 위해 재원을 조달하고, 서구 열강 세력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군대증강과 군비 확대를 위해서였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발행된 당백전은 발행 초기부터 여러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모양과 중량이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엽전)의 5, 6배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100배의 명목가치로 사용케 했고, 실질가치가 엽전의 3분의 1에 불과한 청전(淸錢)을 수입해 엽전과 동일 가치로 유통시켰기 때문이었다. 조정은 이로써 막대한 이득을 봤지만,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물가상승을 부추겨 조선 사회에 경제적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실례로 당백전 발행 초기인 1866년 12월에 7, 8냥에 지나지 않았던 쌀 1섬의 가격이 1, 2년 사이에 약 6배로 폭등했다. 게다가 당백전을 불법제조해 이득을 챙기려는 무리들이 생겨나 그러한 혼란은 더욱 커져갔다.
이렇게 당백전 발행으로 인한 폐단이 매우 심해지자 정부는 주조를 시작한지 5개월 만인 1867년 4월 당백전 주조를 중단시켰고, 1868년 10월에는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당백전 통용 자체를 금지시키고 말았다.당백전 발행을 둘러싼 사태는 경제에 정치논리가 개입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의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1938년 독일과 프랑스, 불가침조약 체결 ▲1949년 첫 징병검사 실시 ▲1987년 박종팔 WBA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 획득 ▲1998년 베네수엘라 대통령선거, 우고 차베스 당선.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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