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入논술특강②-심층면접

입력 2004-12-06 09:55:27

교수: 어서 오게. 자기 소개를 해보겠나?

학생: 저는 ○○○입니다. 현재 ○○ 고등 학교에 다니고 있고, 반에서 미화 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평소 저의 신조는 무슨 일이든 내가 주인이 되어 최선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는 글귀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무슨 일을 할 때에 차선을 염두에 두면 저의 마음이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결과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면접에 임하고 있습니다.

교수: 소개 잘 했네. 그래, 오늘은 몇 시에 왔나?

학생: 여유 있는 마음으로 면접 시험을 보기 위해서 시험 시작 한 시간 전인 12시에 도착했습니다.

교수: 그러면 점심은 먹었는가?

학생: 구내 매점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습니다.

교수: (학생부를 보며) 봉사 활동을 많이 했군 그래. 이렇게 많이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학생: 우선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집과 학교만을 오가면서 만나는 세상의 모습은 마치 개구리가 우물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같았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자신이 바라보는 하늘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봉사 활동을 하기 전의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던 거지요. 그 현실이 답답해서 봉사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봉사 활동을 통해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세상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도 갖게 되었어요. 또한, 제가 봉사 활동을 많이 하게 된 이유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지켜 나가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늘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사는 친구들이 실은 저의 경쟁 상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눈앞이 캄캄해지고는 했어요. 기회 있을 때마다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은 타인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사회에는 경쟁의 논리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공존을 위한 호혜의 논리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같이 봉사 활동을 했던 친구들과 이웃을 통해 저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세상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교수: 잘 들었네. 이제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네.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새로운 시설과 건물을 설립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녹지를 훼손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네. 이 두 가지 입장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해 보게. 아, 자네가 학교 행정을 책임지는 교장이라고 생각하고 답변을 해 보게.

학생: 최근 제가 다니는 학교도 교실 증축을 위해 수업 중인 대낮에도 공사를 하고 있어서 상당히 공감하는 주제인데요, 저는 건물 증축에 회의적인 편입니다. 중?고등 학교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건물을 새로 짓는 가장 큰 이유는 과밀 학급의 해소에 있습니다. 한 교사가 담당하는 학생 수를 줄이는 것은 공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학교를 더 짓고, 교실을 증축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더욱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사람과 돈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현실을 해소하는 것이거든요. 도시에는 과밀 학급이 문제가 되지만 농촌에서는 폐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고요. 더군다나 과밀 학급의 해소를 위한 건물의 증축은 교육 환경을 파괴할 가능성이 큽니다. 증축의 과정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 할 운동장이 줄어들거나 녹지가 훼손당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교육은 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에서도, 녹지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만약 교장 선생님이라면 우선 증축의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할 것입니다. 기존의 시설들을 부분적으로 개조하거나, 묵혀 두고 있는 공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것입니다. 이러한 방안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밝혀지면, 운동장과 주변 녹지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증축을 검토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건물의 토대가 튼튼하다면 층수를 올리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 그렇다면 최근 각 대학에서 시설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생: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시설 확장이 모든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인 것처럼 생각되는 사고 방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시설의 확장 이전에 대학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고려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것은 외형의 변화가 아니라 내부 구성원들의 변화이며 그들의 노력입니다. 실제로 외국의 대학들은 몇 백 년 된 오래된 벽돌 건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 하며, 대학의 상징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교수: 잘 대답했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네. 사회적 엘리트의 역할과 그 자질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해 보고, 그 예를 한 번 들어 보게.

학생: 한 사회는 다양한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개인들은 서로 다른 생김새만큼 재능도 천차만별입니다. 엘리트란 각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며 대중들을 선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사회적 엘리트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각 집단 간의 갈등을 원만하게 통합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엘리트 에게 필요한 자질은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내는 데 필요한 능력과 성품입니다. 사람들은 응집시키는 힘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도덕적인 품성이 가장 큰 힘이 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도덕적인 사람에게 신뢰를 갖고 그의 주변으로 모이게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일제 강점기 때 항일 운동을 하고 해방 이후에 통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던 김구 선생이나, 박정희 정권 시대에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장준하 선생 등이 사회적 엘리트의 예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 엘리트의 자질로 도덕적인 품성만을 드는 것은 너무 협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요즘 사람들은 도덕성보다 오히려 돈과 권력을 쫓는 경향이 강한데, 그렇게 본다면 엘리트의 조건은 경제적 부나 강한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아닐까?

학생: 물론 도덕적인 품성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를 엘리트라고 칭할 수는 없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성품은 착하지만, 결코 엘리트라고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도덕적인 품성이 엘리트를 규정하는 데 여타의 요소보다 더 부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힘은 엘리트보다 대중에게 있으며, 엘리트는 대중들에게 잠재된 재능과 소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이들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를 획득한 이들은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중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대중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지위를 높이는 데 이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대중들의 일시적인 관심을 받을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자발적인 지지를 받기는 힘듭니다. 예를 들어서 박정희 기념관과 김구 기념관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두 기념관 모두 국민들의 성금으로 짓겠다고 했지만, 박정희 기념관을 짓기 위한 모금 액수는 터무니없이 모자랐던 것에 반해, 김구 기념관을 짓기 위한 모금은 높은 지지를 받으며 이루어져 기념관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 최근 대학에서 추진하려 하고 있는 지역 할당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학생: 예. 신입생을 뽑을 때 지역별로 할당하여 선발한다는 것으로, 현재 논의가 되고 있는 지역 할당제는 인구 비례에 따른 지역 할당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 그렇다면 학생은 지역 할당제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말해 보겠나.

학생1: 저는 지역 할당제의 도입에 찬성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특정 대학들이 최상위권의 능력 있는 학생들을 독점하고 있는 형편이에요. 지역 할당제를 도입하게 되면 반드시 일정한 비율로 지역의 학생들을 모집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특정 대학의 인재 독점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지역 할당제는 지역 간 불균등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도시와 농촌, 대도시와 소도시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합니다. 그런데 대학의 서열화와 학력 중심주의는 이러한 지역 격차를 넓히거나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한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은 구성원들의 갈등을 해결하고 그들 사이의 정치, 경제적 격차를 좁힘으로써 사회 통합에 이바지하기 위한 학문을 생산 하고 보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 할당제의 도입을 통해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복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2: 저는 지역 할당제에 대해 반대합니다. 지역 할당제가 특정 대학의 인재 독점이나 지역 격차의 완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우리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인 학벌 지상주의를 고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학벌 중심 사회를 부추길 염려도 있어요. 지역마다 대학 입학자의 수를 배당하면 오히려 그 대학에 대한 선호 현상을 확대시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특정 대학에 대한 선호 현상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대학의 졸업장이 취업과 승진시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학벌주의를 타파해야 하며, 그렇게 되면 지역 할당제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수: (학생1에게) 지역 할당제는 다른 폐해를 낳을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기회 균등의원칙에 어긋 나는 것은 아닐까?

학생1: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기회 균등이라는 말에 함정이 있습니다. 현재 학생들의 학력 격차는 그 자신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경제 수준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모든 수험생들에게 똑같은 기회만을 부여하는 것은 불평등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똑같이 부여하는 형식적인 기회 균등이 아니라 실질적인 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지역 할당제는 기회 균등의 원칙을 오히려 확고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수: 여기 들어오기 전에 질문지를 읽었을텐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해 보게. 다시 한 번 읽어 주겠네. 인문학이 어떻게 정보화 시대에 개인의 주체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 말해 보게.

학생: 지식 정보화 시대에는 지식이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이 됩니다. 예전에는 인간의 노동력이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 원천이 되었으나, 이제는 지식이 그 위치를 대체함으로써 인간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인문학은 이와 같은 인간 소외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 합니다.

우선 인문학은 정보화 시대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 궁극적인 의미를 해명해 줍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정보화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고 있는 현실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인터넷 대란 사건이나 스팸 메일의 확산, 연령을 가리지 않는 인터넷 음란물의 이용 등과 같은 정보화의 폐해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정보화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은 단순한 부작용 정도로 치부하며, 정보화의 속도를 맹목적으로 따라잡아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즉, 인간이 정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인문학은 정보화 시대의 의미를 밝힘으로써 정보화에 대한 맹목적인 따라잡기를 제어할 수 있으며, 개인의 주체적인 정보 습득과 이용, 그리고 그 유통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철학?심리학은 정보화 시대가 가능했던 인간의 존재 조건과 욕망을 해명하고 이후의 예상되는 변화를 예측함으로써 주체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하고, 역사학은 과거에 있었던 정보 유통과의 비교를 통해 현재의 양상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사회학은 정보화로 인한 사회의 계층, 계급 구조의 변화, 새로운 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집단의 성격, 정보화로 인한 사회적 소외 현상을 밝힘으로써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나의 주체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밖에도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주체적인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교수: 개인의 주체화 이외에 인문학이 정보화 시대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 해 보게.

학생: 저는 사실 정보화 사회일수록 인문학은 더욱 각광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문학은 정보화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볼게요. 저희들이 좋아하는 게임들을 보면, 마치 인간 사회를 축소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인기 있는 게임들일 수록 특히 더 그러하구요. 이러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컴퓨터 회사에서 인문학 출신자들을 뽑는 것도 이러한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더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정보화 시대일수록 인문학적인 마인드가 절실해집니다. 인문학적인 마인드란 먼저 인간과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지난 번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당시에 사령실과 기관사 간에는 첨단 통신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었고 사령실에는 각 역사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해 주는 정보 시스템이 있었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습니다. 이는 최첨단 정보 시스템을 지하철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만 여기고, 사람의 안전을 위한 시스템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는, 정보화가 진척될수록 인문학적인 사고는 더욱 절실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