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말기의 대표적인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가 1909년 12월 4일 한일합방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의 요지는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지켜주려 했지만 조정의 무능으로 주권을 일본에게 넘겨줬다. 을사조약 이후 헤이그 밀사 사건과 이토 히로부미 암살로 일본이 더 이상 선의를 가질 수 없었다. 서구 열강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본에게 주권을 넘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등이다. 이미 대한제국의 모든 주권을 강탈한 일제는 '병합처리방안'을 처결한 상태였다. 마지막 남은 조치는 '합병'을 공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한일합방이 한국민들이 원한 것으로 사실을 날조하기로 했다. 이용구가 이끄는 일진회를 비롯해 대한협회, 서북학회 등과 '3파연합' 제휴공작이 실행됐다. 이 연합은 깨졌고 일진회가 단독으로 성명서를 이끌어냈다. 서울 회원 200명이 긴급 소집돼 임시총회가 개최됐지만 회원들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회원 만장일치로 가결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성명이 발표되자 전국적인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이튿날인 12월 5일 '대한매일신보'는 이에 대해 '노회선언(奴會宣言)'이라 혹평했다. 흥사단 등의 민족단체, 손병희의 천도교, 각 학교 교사'학생까지도 매국역적 일진회를 성토하고 나섰다. 관련자들에 대해 법적 처벌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매국노들에 대한 암살 시도도 있었다. 전국에서 상소, 연설 혹은 격문 등이 쏟아졌다. 이러한 노력에도 대한제국은 결국 8월 29일 일제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1884년 갑신정변 발발 ▲1899년 독립신문, 창간 4년여 만에 폐간 ▲1952년 런던스모그 사건 발생 ▲1996년 미국 화성 탐사선 '패스파인더'호 발사 성공.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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