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재촉하는 찬비가 소리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무사히 잘 넘기셨는지 궁금도 하거니와 심란도 하고 가을상념도 좀 담아 띄웁니다.
사색의 계절, 이맘때쯤이면 자꾸만 우리들 마음이 고향을 맴도는 것은 마치 연어가 먼 여정을 마다않고 모천을 찾는 것처럼 태생적 인연과 성장기의 정분이 고스란히 그곳에 묻혀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 옛날 우리들의 학창시절, 사서도 한다는 초년의 고생이었지만 정말 힘들었지요. 더더욱 겨울철이면 외풍 심한 골방 잠자리에, 보온도 부실한 얇은 입성에 강추위의 등굣길, 추풍령 넘어 사정없이 몰아치던 맞바람 역풍에 그 여린 고추가 시리다 못해 아리아리하던 것 생각나지 않습니까?
이렇게 시작한 우리들의 청장년기의 시련이 가난이란 스승을 모시고 참고 견디며 살아왔기에 우리세대의 생명력은 요즘 젊은이들의 그것보다 훨씬 질기다 하겠습니다.
희망과 환희로 가득찬 가슴을 안고 찬란한 청춘을 구가하던 젊은 한때가 우리들에게도 있었던 것처럼 분명 차곡차곡 쌓인 오랜 삶의 무게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어려움도 있게 마련입니다.
물론 건강만 받쳐준다면 세월이 안겨다주는 노화쯤은 그리 걱정할 바가 아닌 것이, 서로 교감하며 좋은 정의로 엮어질 수 있다면 이 같은 어려움은 능히 다스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균형있는 생활에 트인 마음으로 따뜻하면서도 무던한 속정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면 나이란 그리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한 통화의 덕담만으로도 그날 하루를 사는 마음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고독하고 몸도 약한 이 나이에, 벗님들이여! 이 편지 접하시는 대로 정의가 소통되는 문안 한번 나눠보십시오. 반드시 기분좋은 일진이 뒤따를 것입니다.
긴밤 짧은 해에 추운 날씨, 조금은 우울해지기 쉬운 때입니다
적당한 운동이나 소일거리로 잘 넘기십시오. 아니면 분위기있는 외식자리에서 모처럼의 입맛을 돋우는 것도 좋거니와 서책을 벗삼는 것도 좋은 처방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먼저 가신 님을 향한 추모의 정이 가슴을 저미는 것도 바로 요즘, 가을에 겪는 마음 아픔의 하나입니다.
당초 계절인사에 덧붙여 이 어려운 때를 서로 의지하며 따습게 잘 넘기자는 말이 위주였는데 가을을 타서인지 제 상념에 겨워 제풀에 취한 넋두리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제 곧 겨울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벗 재환이가 2004년 만추에
▲이 편지는 김천농고 제3회 졸업생인 필자가 김천시 농소면의 박옥갑씨 등 이제는 모두 72, 73세인 동창생들에게 보낸 문안편지입니다.
박옥갑(김천시 농소면 월곡리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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