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폭탄'과 다름없죠"

입력 2004-12-03 11:25:27

'도박' 2년간 2억 탕진한 버스기사의 고백

"밤을 꼬박 새고 운전대를 잡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달리는 폭탄'과 다름없지요." 대구 시내버스회사에 근무하는 이성훈(가명·45)씨가 2일 털어놓은 일부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도박 중독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씨는 지난 몇년간 포커도박에 빠져 2억여원을 날렸다. 저축예금 5천여만원을 비롯, 은행 및 카드빚 6천만원, 집 담보 대출금 등을 노름으로 몽땅 날렸고, 그간의 포커판에 쏟아부었다. 심지어 하루에 800만~1천만원을 인출했다가 노름으로 모두 잃은 적도 수 차례 있다고 이씨는 털어놓았다.

이씨는 자신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가정 파탄 직전인 기사들도 많다고 했다. 차압당하고 퇴직금까지 가불받아 도박으로 날린 경우도 적잖으며 은행, 사채까지 빌려 2억원을 빚지고 도망간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씨 역시 얼마전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는 바람에 별거에 들어간 상태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운전기사 자신에 그치지 않고 시민 안전까지 위협한다는데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사들의 도박이 시민 안전과 직접 연결된다는 겁니다. 잠 한숨 못자고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3개월간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운전한 적도 있습니다. 졸음 운전을 할 수밖에 없지요. 폭탄을 몰고 도심을 질주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씨는 오전부터 그 다음날 아침 일 나갈 때까지 많으면 1, 2시간 자거나 아예 자지못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종점에서 주어지는 20분 정도의 휴식시간에 틈틈이 자면서 견뎌보지만 운전 중 쏟아지는 졸음을 못이길 때가 많다는 것이다.

"포카나 훌라 등 카드도박과 아도사키 등 노름에 중독되다시피한 운전기사가 회사마다 몇 명씩은 됩니다. '어제 잠 한숨도 못자고 운전했다'는 동료들의 말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씨는 악몽같은 도박 생활을 청산키로 결심했다. "시민들의 안전과 가정의 안정을 위해선 도박 중독증에 빠진 기사들의 도박을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회사나 경찰이 나서주면 좋겠지만 이런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다 자칫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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