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15년째인 나카오(43'일본 오카야마시)씨는 부자다. 결혼 뒤 장인이 하는 건물 임대업을 물려받은 데다 본가로부터도 시골 땅 등을 상속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데릴사위이지만 처가에 얹혀 사는 것도 아니다. 성만 바꿨을 뿐 아내 집안으로부터 별다른 간섭도 받지 않는다. 나카오씨는 데릴사위의 혜택을 톡톡히 보며 풍요로운 생활을 즐긴다. 주위의 부러움을 사면서.
일본에서 데릴사위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오카야마(岡山)현의 히바다 츠요시(62)씨는 "요즘도 결혼하는 남자 10명 중 1명 꼴은 데릴사위"라고 했다. 장남은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2남이나 3남이 데릴사위로 가는 경우가 많다. 남의 가문에 대를 잇는다는 게 결코 숨길 일도 아니다. 단지 성을 바꿔 처가의 자식으로 들어가는 대신 양쪽 집안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본의 데릴사위는 '가문'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의식에서 비롯됐다.
웬만한 가문의 오래된 건물이나 성(城)에는 반드시 그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오사카성이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을 상징하는 것을 비롯해 마쯔에성(松江城), 쯔야마성(津山城), 오카야마성 등이 모두 그 성을 축조했거나 성주로 활동한 유력 가문을 상징한다. 가문을 절대시하는 일본인들의 의식이 현대〉?데릴사위제를 유지시키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결혼풍속은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예단, 결혼식, 피로연 등은 사뭇 다르다. 옛날에는 결혼 예단으로 기모노와 술, 해산물 등을 보냈으나 요즘은 돈을 보낸다. 신랑이 신부쪽에 보내는 '오비료', 신부가 신랑쪽에 보내는 '하카마료'가 있으며, 오비료가 하카마료의 4,5배에 달한다. 결혼식은 일반 예식장이나 불교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신사(神社)에서 하는 '신도식(神道式)'과 교회나 성당에서 하는 '교회식'이 보편적이다.
신도식은 신사의 신관(神宮)이 주관하며, '339도'라는 주요 의식이 따른다. 3잔의 술잔을 두고 신랑이 먼저 한 잔을 마신 뒤 신부가 다음, 마지막으로 신랑이 마신다. 이렇게 3차례 반복해 9잔을 마시게 되며, 이 의식이 두 사람의 완전한 결합을 알린다는 것. 피로연의 경우 과거에는 신랑집에서 주로 했으나, 요즘은 호텔이나 레스토랑, 야외 공원 등지에서 이뤄진다. 양측은 가까운 친지나 친구들만 초대하며, 하객들이 수십 만원씩의 축의금을 내는 대신 주최 측은 반드시 하객들에게 술과 음식뿐 아니라 답례품을 준비한다. 피로연 도중 신부는 두세 차례 옷을 갈아입는 관행이 있는데, 이를 '오이로나로시'라고 한다.
돗도리(鳥取)현 돗도리시의 이마이 아쯔오(54)씨 집 거실 벽면에는 자그마한 신위가 있다. 조상을 모신 신위다. 이마이씨의 아내는 매일 아침 이 신위에 밥을 올려놓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일본인 상당수는 이처럼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과 별도로 집안 벽면 한쪽을 파고 만든 신위를 모시고 있다. 불교신자의 집에는 신위 외에 불단을 따로 마련하고 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1868년) 이후 일본인 대다수는 조상의 무덤을 조성해 매장하지 않고, 주로 화장하거나 납골묘에 모시고 있다. 일본의 시골에는 절이나 동네 인근에서 흔히 이런 납골묘를 볼 수 있다. 한국처럼 산 능선 높은 곳에 명당을 찾아 분묘하는 것과 달리, 납골묘나 집안 신위를 통해 조상을 가까이 접하고 있다. 제사도 한국처럼 매년 지내지 않고, 장례를 치르고 일정기간 뒤(1, 3, 7, 13, 17, 23, 27, 33, 50년)에 과일 등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제사를 올린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조상이 숨진 지 50년째 되는 해를 끝으로 제사를 마무리하지만, 유력 가문이나 돈 많은 집안의 경우 조상이 숨진 지 100년째 되는 해에 대규모로 한 번 더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15일, 오카야마현 기비쓰(吉備津) 신사에는 색동옷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북적댔다. 주로 세살~일곱살짜리 남녀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나와 신사에 참배하거나 사진을 찍는 등 분주했다. 일본에서 11월 15일은 '시치고상(七五三)'이라는 연례축제일이다. 이 날에는 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고 액막이를 하는 행사를 갖는다. 남자아이는 세 살과 다섯 살, 여자아이는 세 살과 일곱 살때 부모를 따라 신사에 참배한다.
또 매년 3월 3일에는 집집마다 7, 8단(壇)의 인형을 장식하는 '히나 마쓰리(祝祭)'가 벌어진다. 제일 윗단에는 왕과 왕비 모양의 인형을, 다음 단에는 궁녀 모양의 인형 세 개를, 그 아래에는 악사 모양의 인형 다섯 개를 장식한다. 히나 마쓰리는 당초 헤이안시대(平安時代:794~1192년)부터 인형에 신체의 더러움을 옮겨 바다나 강에 흘려보내 재앙을 씻어낸다는 의미에서 시작됐으나, 지금은 여자 어린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연례행사 외에도 고기잡이 축제, 낙지축제, 양산축제, 국화축제, 뱃놀이 축제 등 도시나 시골 곳곳에서 거의 매월 온갖 축제가 펼쳐진다. 지역별로 벌어지는 각 축제는 옛 사무라이 정신을 잇고,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8년) 각 지역 막부(幕府)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이벤트에 뿌리를 두고,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공동체 문화의 산물인 셈이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사진: 일본의 신사나 성의 지붕에는 그 신사나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李대통령 "위안부 합의 뒤집으면 안 돼…일본 매우 중요"
국회 법사위원장 6선 추미애 선출…"사법개혁 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