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대구보건대 문화관은 환호성과 박수소리, 카메라 플래시로 가득 찼다.
유명 연예인이나 댄스팀이 아닌 14세 중학생에서부터 23세 평범한 대학생까지 화려하면서도 엽기적인 복장의 사람들이 무대를 가득 메웠기 때문. 이들은 중구 청소년문화의 집에서 주최한 '제2회 코스프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달려온 코스튬플레이 마니아들이다.
'코스튬플레이'는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어른들의 눈에는 아직 익숙지 않겠지만 10, 20대를 중심으로 코스프레는 새로운 놀이 문화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시간과 노력, 열정을 가득 쏟아부은 '코스프레' 축제에 동참해봤다.
◇'코스튬플레이' 축제의 현장 속으로
6개월 전 코스프레 동아리 '신화'에 가입한 은미(17). 이날은 은미가 코스튬을 입고 처음 공연하는 날이었다.
하늘거리는 검은색 치마와 짧은 상의를 입은 은미가 무대에 올랐다.
그룹 '신화'의 백댄서 역이다.
은미는 그동안 부모님의 눈을 피해 의상을 마련하고 춤 연습을 하는데 주말을 모두 투자했다.
쏟아부은 건 시간만이 아니었다.
용돈은 물론 차비, 빵값,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까지 몽땅 코스프레를 위해 썼다.
하지만 막상 무대 위에 올라 사람들 앞에 서니 그 모든 고충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평소 "땅만 쳐다보고 다니느냐"는 핀잔을 듣던 소심한 은미가 이날 하루만큼은 화려하고 특별한 존재가 됐다.
이날 특별한 존재는 은미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대회에는 12개팀, 100여명의 코스튬 플레이어가 무대에 올랐다.
'샤먼킹', '나루토', '선녀강림', '마리 앙뜨와네뜨' 등 만화나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H.O.T' '신화' 등과 같은 가수를 흉내내거나 나름대로 스토리를 갖춘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코스프레를 선보였다.
무대에서만 코스프레가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구경하러 온 관객들 중 상당수도 코스튬을 입고 열광했다.
직접 만든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이 곳을 찾은 이지애(15)양은 "직접 주제를 정해서 디자인을 하고 만든 의상"이라며 "만화의 주인공이 돼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너무 신난다"고 말했다.
◇ 코스프레가 뭐야?
지금 30대라면 어렴풋이 기억해 낼 것이다.
보자기를 망토처럼 둘러쓰고 장독대에서 뛰어내리며 "슈퍼맨"를 외치던 어린 시절을. 코스프레의 개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스프레'는 의상을 뜻하는 '코스튬(Costume)'과 '놀다'라는 의미의 '플레이(Play)'의 합성어인 '코스튬 플레이'를 일본식 약어로 만든 것. 만화나 게임의 캐릭터나 연예인과 닮은 의상 및 소품, 머리 모양을 하고 몸짓이나 행동을 흉내내는 놀이다.
1990년대 중반 국내에 소개된 코스프레는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10, 20대에게 급속도로 확산됐다.
최근 코스프레는 서울, 부산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최하는 축제나 게임, 문화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박나래(16)양은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참가하다가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하게 됐다"며 "적어도 45명 정원의 한 반에 2, 3명은 코스프레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코스프레는 그 분야가 세분화하는 추세다.
유명 가수를 코스프레하는 '팬코스'와 진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으로 공연하는 '비주얼',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거나 아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창작'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코스프레 동호회는 수백명의 팬들을 거느리며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린다.
또 의상, 메이크업, 스태프, 주연 등 회원 각자의 역할이 세분화돼 있다.
대구에서는 5~7개의 정도의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고 제일여상의 'ACCP'처럼 학교 내에서 정식 클럽으로 활동하는 곳도 있다.
◇왜? 재밌잖아!
10, 20들이 코스프레에 열광하는 이유는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고생 끝에 재현해냈을 때의 짜릿함 때문이다.
또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느낌도 코스프레를 즐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단순히 자신을 드러내거나 튀고 싶다는 이유로 코스프레를 하는 청소년도 꽤 된다.
예쁜 옷을 입고 카메라에 노출돼 연예인이 된 듯한 느낌을 즐기는 것. 전국의 코스프레 축제를 찾아다닌다는 박유진(22·북구 침산동)씨는 "남들이 안하는 것이고, 남들보다 튀어 보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또 이들은 코스프레가 대인관계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코스프레 축제를 찾아다니면 자신보다 개성있고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 김수영(20)씨는 "원래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지만 무대에도 자주 서고 여러 지역을 돌며 사람들을 만나면서 원만한 성격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코스프레가 인생의 진로를 정하는데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동호회에서 주로 분장을 맡았던 이민영(18)양은 대학에서 뷰티메이크업을 전공할 생각이다.
"원래 고등학교에서 컴퓨터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코스프레를 하면서 분장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져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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