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入 실전 논술·구술면접 특강

입력 2004-11-29 14:03:44

매일신문사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요청에 부응하여 송원학원 논술·심층면접팀과 공동으로 향후 6회에 걸쳐 '적중 논술·심층면접'코너를 운영합니다.

희망교육 내 대학입시 면에 문제를 게재하고 모범 예문과 상세한 해설은 본사 홈페이지(www.imaeil.com)와 송원학원 홈페이지(www.songwonedu.com)에 올릴 예정입니다.

■현대 문명의 성격과 방향

문>제시문 (가)는 인류 문명이 아날로그 문명에서 디지털 문명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디지털 문명에 드리운 그림자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글이다.

반면 제시문 (나), (다), (라)는 각각 이러한 디지털 문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극복하고 바람직한 인류 문명을 열어갈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제시문의 내용을 단서로 삼아, 디지털 문명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시오.

(띄어쓰기 포함 1,800자 ±100자)

(가) 세계는 이제 컴퓨터와 유전 공학을 두 축으로 하여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리얼리티에서 사이버로, 자연에서 인공으로, 문자에서 영상으로 그 무게 중심을 옮겨 가고 있는 중이다.

이와 함께 그 인식 방식과 가치도 바뀌고 있는데, 예컨대 사유에서 감성으로, 본연에서 임시로, 인격에서 기능으로, 실체에서 가상으로, 열린 공동체에서 닫힌 개체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그것들은 삶의 일상에서 정신과 영혼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의 방식과 서로 간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의 태도, 무엇이 진정한 것이고 어떤 것이 현상적인 것인가의 관점과 가치, 어디로 지향하고 무엇에서 행복과 의미를 얻을 것인가의 목표도 함께 변모할 것이다.

이 멋진 문명에 드리운 그림자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당장의 눈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마, 세계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겠지만 그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국가와 기업은 거대해지겠지만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해야 할 개인은 더 가난해질 것이고, 사람들은 돈과 속도에 치밀려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며 뒤집힌 풍속과 윤리는 우리의 인식과 의식을 아노미 상태로 빠뜨릴 것이다.

조직과 복제로 말미암은 생태계의 왜곡은 인간과 자연의 생명들에게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도 모르며, 자본과 과학의 무한 증식 운동은 세계의 사람들과 지구의 자원을 얼마나 훼손할지 예상할 수 없게 만든다.

-김병익,『21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에서

(나) 민족학자의 위치라는 개념 속에 고유한 모습을 우리가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이란,『불평등 기원론』에 의해 남겨진 폐허로부터『에밀』이 그 비밀을 시사하고 있는 『사회 계약론』의 풍요한 설계로, 루소를 진전시켰던 지적 절차를 우리들 자신을 위해 재정립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난 후에도, 그것 대신에 하나의 새로운 질서를 수립할 수 있게 하는 원칙들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를 밝혀 주었던 사람이 바로 루소이다.

루소는 자연적 인간을 미화하는 잘못을 저지른 디드로와 같은 오류를 결코 범하지 않았다.

또한, 루소는 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를 혼동하는 위험도 저지르지 않았다.

사회 상태가 인간에게는 고유한 것이지만, 그것은 그 자체와 함께 악을 초래하는 것이므로, 이 악 자체가 사회 상태에 고유한 것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점이란 것을 루소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사회 질서가 초래한 악습들의 부정의 증거를 넘어서서 인간 사회의 확고한 지반을 발견해야만 한다.

민족학이 이 같은 조사에 이바지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민족학은 그 기반이 우리들 자신의 문명 속에서는 발견될 수 없다는 것을 밝혀 준다.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모든 사회들 가운데서 우리들 자신의 사회는 그 기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한편, 민족학은 우리들이 대부분의 인간 사회들에 공통되는 특성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하나의 모델을 구성하는 것을 도와준다.

어떤 사회도 이 모델에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으나, 이 모델은 우리의 연구 방향을 엄격하게 규정해 준다.

루소는 실험적인 목적을 위하여 그 모델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시대는 이른바 신석기 시대였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가 이렇게 생각한 것이 옳았다고 말하고 싶다.

신석기시대에 인간들은 그의 안전에 필수적인 대부분의 발명품을 이미 만들어 내었다.

우리는 왜 문자가 여기에서 배제될 수 있는지를 고찰해 보았다.

문자란 양날을 지닌 하나의 무기라고 말하는 것은 미개주의의 징후가 아니다.

오늘날의 인공 두뇌학자들은 이 사실을 재발견하였다.

신석기시대에 인간들은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생각할 여유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인간은 질병에 대한 대비책만은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위생 관념에서 진보를 꾀한다는 것이 도리어 다른 여러 가지 부작용을 야기하는지의 여부는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질병의 예방은 도리어 그 부작용으로 대기근이라든가 대살육전이라든가, 또는 인구의 팽창을 막아야 할 필요성-의술이 발전하지 못한 옛날에는 전염병이 인구 팽창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었고, 그것은 인구 조절을 하는 방편으로서는 앞의 두 가지보다 결코 더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같은 것을 낳게 할 수도 있다.

그 신화적 심상(心像)을 소유했던 시대에는 인간은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더 자유스럽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었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 다만 매우 제한된 통제력만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꿈(이상)이라는 완충 장치를 통해 어느 정도 자신을 보호하기도 하고 해방시키기도 하였다.

이 같은 꿈들이 차차 지식의 형태로 바뀌어감에 따라서 인간의 힘은 증대하였다.

그러나 자연계와의 투쟁에서 이김으로써 얻은, 우리가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간의 힘이란 기실 인류와 물질계의 점차적인 융합에 대한 주관적 의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 물질계에서의 거대한 톱니바퀴는 이제 인류에 대해 무서운 이방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사고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그 대행자 역할을 맡게 된, 고요한 세계의 식민주(植民主)로서 작용할 뿐이다.

만약 인간성이 미개 상태의 태만과 우리들의 자부심에 의해 가속되고 있는 추구 활동 사이의 중간 지역을 고수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행복에 더 좋을 것이라고 한 루소의 주장은 틀림없이 옳은 생각이었다.

루소는 그 중간 상태가 인간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직 사건들의 어떤 불길한 전환만이 우리로 하여금 그 상태를 떠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건들의 전환은 기계 문명의 발달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기계 문명은 첫째로는 독특하다는 점에서, 둘째로는 때늦은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중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루소가 말한 그 중간 상태는 결코 하나의 미개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직도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진보를 전제하며 또 용인한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슬픈 열대』에서

(다) 우리는 지금 혼합의 시대에 살고 있다.

즉 아날로그와 디지털, 아톰과 비트, 굴뚝과 벤처, 오프라인과 온라인, 텍스트와 하이퍼텍스트, 종이책과 전자책, 문자 문화와 영상 문화 등이 우리 삶 속에 혼재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책의 종말'을 책을 써서 주장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고, 벤처 열기가 가시자 전통 산업의 'e-비즈니스'화를 정부 정책에서부터 적극 추진하는 것이라든가, 온라인 운영에 오프라인 요소를 강화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영상 문화가 문자 문화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조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통시적(通時的) 혼합 현상은 성실한 미래학이라면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변화의 태풍 속에서 한편에서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첨단의 피로 때문에 새로움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발전의 환희 속에서 새것이 주는 비현실적 희망의 기만에 쉽게 속았을 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문명의 전환기에는 그 전의 문명 형태와 새로운 문명 형태가 혼합 진행하는 시기가 최소한 한 세대 이상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현상은 21세기를 삼등분하여 그 초반에 걸쳐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모든 텍스트가 하이퍼텍스트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굴뚝 산업이 전부 소멸하는 때가 올지라도 당분간은 혼재와 중첩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혼합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후의 새로운 문명 형태가 어떤 것이 될지도 결정된다.

-김용석,『깊이와 넓이 4막 16장』에서

(라) 도시 국가들을 중심으로 찬란한 고전기 문명이 꽃피기 몇 세기 전, 구 헬레니즘 세계는 미케네 문명의 지배를 받았다.

『일리아드』에서 트로이에 대한 아카이아군의 원정을 이끄는 것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다.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고대 요새의 폐허 앞에 선 오늘날의 여행자는 퀴클롭스가 만든 듯 수 미터의 두께에 거대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성채를 발견한다.

그 호전적인 문명에서 인간의 모든 노력, 모든 물질적 집적은 안과 밖을 가르는 데 사용되었다.

미케네의 요새와 판이한-그리고 훨씬 앞서 건축된-크노소스의 궁전은 7세기 동안 찬란한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였다.

크레타의 궁전에는 방어 시설이 없다.

평화적인 미노아 문명은 건축의 복합성, 실내 장식, 아름답고 절묘한 내부 배치(하수구, 수도관 등)에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미케네에서 육중한 성벽 구축에 투입되었던 모든 에너지가 크노소스에서는 생활 방식을 세련되게 하고, 복잡한 구상을 하며, 극도로 사치스런 건축적 디테일, 예컨대 층계, 안뜰, 기둥, 석상, 층, 테라스, 대기실. 호화로운 대연회장, 작고 비밀스런 방, 보물 창고, 모퉁이, 꽃잎 장식, 막다른 길 등을 늘리는 데 사용되었다.

크노소스의 궁전은 대단히 복잡하지만, 안뜰과 천창(天窓)들을 통해 하늘과 태양을 향해 열려 있고, 문과 창문들을 통해 세상으로 통한다.

그것은 또한 포석을 깐 길들을 통해 크레타의 다른 궁전들에 연결된다.

호전적 문명 속에 살지 않았을 뿐더러 방어, 공격, 힘의 관계, 정복과는 다른 문제에 정신을 쏟았던 크레타인들은 예술과 상업의 중개 아래 다른 사회들을 향해 활짝 열리는 동시에 자신들의 세계를 그것 자체위로 접고 또 접어, 아마도 '그리스의 기적'에 앞서며 그것을 조건 짓는 전설적인 미적 풍요로움을 꽃피웠다.

성벽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크레타인들은 미궁을, 다시 말해 문화적 복합화를, 건축 공간 위로 투사된 집단 지성을 고안해 냈던 것이다.

미노타우로스는 도대체 누구인가? 자신의 어두운 소굴에서 젊은 아테네인들을 삼키던 무시무시한 괴물인가? 미노타우로스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그리스인들의 것이다.

미케네의 아들이자『일리아드』의 독자인 호전적인 그리스인들은 크노소스를, 나아가 그 평화적인 문명의 수수께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인즉, 인간-황소 미노타우로스는 신성한 황소 위에서 재주넘기 의식을 거행하는 미노아의 곡예사에 다름 아니다.

인간과 황소의 잡종인 미노타우로스는 분명 미궁의 중심에서 나타나지만, 그것은 크노소스 궁전의 안뜰에 다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을 향해 활짝 열린 양지바른 야외 광장에서 가볍고 우아하게 이루어진다.

미노아 문명은 전쟁으로 멸망하지 않았다.

그 문명은 일련의 자연 재해들과 그에 따른 인구 분산 때문에 멸망했다.

불탄 궁전의 잔해 속에서는 그 어떤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이 크레타에 자리 잡은 것은 원래의 문명이 꺼지고 난 다음이었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 그것은 예술적이고 기술적이며 무기도 노예도 없는 미노아 문명을 은폐하는 미케네인들을 표상한다.

호전적인 그리스인들이 평화적인 크레타를 뒤덮는 것이다.

곧 평화가 갈등 아래 묻히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미노스를 억압하고, 그를 가장 아래쪽에 깊숙이 묻었다, 그들이 미노스를 지옥의 판관 가운데 하나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제우스의 투명한 변장 아래 유럽을 떠받치는 것은 분명 미노스의 황소이다.

-피에르 레비,『집단 지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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