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입력 2004-11-09 09:00:40

없어져 주겠다고 자꾸

으름장 놓지 말아라

없어져 주겠다고 벼르지 않아도

날마다 마음은 줄어가는 것 아니냐

새잎 돋을 때의 싸한 황홀

이제는 졸아붙어 줄기마다

쭈글쭈글 매달려 있지 않느냐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그래, 결국 이렇게 되고 만 것 아니냐

그러니 풋내 나는 으름장은 잠시 거두고

오늘은 잘 가라앉은 시간을 빌려다오

담쟁이덩굴 남은 뼈대를 거두어 주며

우리 한 겹 옷을 서로 입혀 드리자

추운 빗물 으스스 스며들지 못하게시리

꼼꼼히 지은 따뜻한 한 겹 옷.

한영옥 '11월에게'

생각컨데 11월은 가장 마음이 추운 달이다.

시월은 아직도 열매와 이삭들의 풍요가 남아 있고 십이월은 이미 새해의 입김이 닿아 있지만 11월은 이도 저도 아니니 시린 찬바람을 어찌하겠는가. 시간이 단순한 숫자 너머 인격일 때 그것은 그대를 간섭하는 그대 속의 타자(他者)이다.

그러므로 없어져 주겠다고 으름장 놓는 것도, 추운 세상에게 따뜻한 한 겹 옷 베풀 수 있는 것도 벽에 걸려있는 11월이 아니라 그대 속을 살고 있는 11월이다.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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