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50대에게 음악감상실은 아릿한 추억의 공간이다. 그 흔한 오디오 기기나 음반을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던 1970년대,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듯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음악감상실은 음악의 오아시스였다. 통행금지와 장발단속, 금지곡 등 수많은 금기들로 얼룩졌던 그 때 그 시절. 음악감상실은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라는 청년 문화의 발화점이자 불안한 자신의 미래와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던 유일한 젊음의 해방구이기도 했다.
음악감상실의 꽃은 단연 DJ다. 유리창 너머 뮤직박스 속의 DJ들은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요즘 10대들이 연예인에게 열광하듯 지금의 40, 50대들은 DJ에게 열광했다. 이제는 추억의 단편이 된 뮤직박스를 30년째 지켜온 사람이 있다. DJ 김병규(49)씨가 주인공. 30대 후반~50대 청취자를 겨냥한 교통방송(103.9mHZ) '낭만이 있는 곳에' DJ로도 활동 중인 그는 지난해 음악감상실 '낭만이 있는 곳에'의 문을 열고 7080 세대들의 추억 몰이에 한창이다.
그가 처음 다운타운 DJ를 시작한 건 꼭 30년 전인 1974년. 김병규씨는 우연찮은 기회로 DJ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어느 날 찾아간 음악감상실에서 잠시 휴가를 간 고정 DJ를 대신해 4일 정도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것. 그는 유머와 개성 짙은 몸짓으로 청중들을 매료시키며 단번에 음악감상실 정식 DJ 자리를 꿰찼다. 다른 DJ들이 음악다방에서 견습기간을 거쳐 최소한 1년 정도 수업을 받아야만 정식 DJ가 될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기용이었다.
당시 음악감상실을 찾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청곡이 DJ에게 '간택'되도록 갖가지 묘안을 짜냈다. DJ들이 여성들의 희망곡을 주로 틀어주는 것을 알고 여성의 글씨체를 흉내 내는 남성들도 있었고 담배 개비 위에 신청곡을 적어 넣기도 했다. 일종의 뇌물인 셈. 신청곡을 적은 메모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적어 보내는 일도 예사였다. 그는 "장발이나 미니스커트 단속이 있는 날이면 음악감상실은 시장 골목처럼 시끌벅적했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단속을 피해 음악감상실로 숨어들었다는 것. 사람들은 날이 저물 때까지 음악을 들으며 단속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연인과 나란히 손을 잡고 앉아 사랑을 키우는 젊은이들도 있었고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작업'을 들어가는 남자들도 많았죠. 공개적인 데이트 장소로 그만한 곳이 없으니까요."
음악감상실은 1980년대 들어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디오기기나 음반이 흔해졌고 휴대용카세트가 보급되면서 굳이 음악을 들으려 음악감상실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됐다. 또 음악에 대한 욕구는 방송이 충분히 채워주고 있었다. 그도 1985년부터 운영해 온 음악감상실을 정리하고 방송에만 매달렸다. 그는 1996년까지 추억의 팝송, 팝스 팝스, 팝스 원, 7시의 데이트 등 다양한 프로를 진행했다. "다운타운 DJ를 할 때를 돌이켜보면 말투나 행동들이 참 촌스러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DJ들의 진행방식도 라디오 방송에 가깝습니다. 예전 다운타운 DJ의 맥은 완전히 끊겼다고 봐야죠."
하지만 그는 끝까지 뮤직박스를 지킬 계획이다. 40, 50대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척박한 요즘 그들만을 위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생의 반환점을 돈 중년 세대들이 그리운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추억 지킴이'처럼 LP판을 고르는 그의 손길이 분주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사진설명 : 40, 50대 중년층의 '추억 지킴이' 김병규씨. 청춘을 음악과 함께 한 그는 지금도 뮤직박스를 지키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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