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한 문화재 절도 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파리에 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의 고문서 담당 직원이 이 도서관에 소장된 다량의 히브리어 고문헌을 훔쳐 낸 사실이 현지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 등 언론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범인은 이 도서관 히브리어 고문서 담당이자 관장직을 맡고 있는 인물로 지난 93년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해 외규장각 약탈 고문서 중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 상권의 반환 의사를 밝히자 '국가원수에 의한 절도 행위'라며 극렬하게 비난한 주인공이다.
93년 당시 BNF의 몇몇 직원들은 도서관의 고문서들을 절대 내줄 수 없다며 미테랑 대통령의 한국 고문서 반환에 저항했다는 현지 보도는 우리 국민을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다.
BNF는 파리를 21세기 '알렉산드리아'로 만들자는 미테랑 대통령의 꿈이 담긴 도서관으로 거센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새로 지은 도서관이다.
무엇보다 이 도서관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우리의 '직지심체요절'이 보관돼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또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약탈한 강화도 외규장각 소장 고문서 대부분이 동양문헌실에 보관돼 있어 이번 문화재 절도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
BNF 조사 결과 이곳 소장 고문헌 중 수사본(手寫本) 25권과 인쇄본 121권이 도둑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프랑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범인이 최근 수년 동안 희귀본 등을 몰래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고문서 중에는 영국의 한 수집가의 손에 들어갔다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돼 이스라엘 예루살렘대학에 흘러 들어간 것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원 소장처가 BNF임이 확인됐고 대학 측이 이를 프랑스 당국에 통보함으로써 또 다른 절도행각까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다행히 그 직원이 우리의 고문서를 훔쳐냈다는 보도가 없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가 우리나라로 되돌아오는 경로는 문화재 반환협정 등 정부 간 협상이나 1993년 한·불 정상회담과 같은 외국 정부의 기증, 민간인 기증, 외국 경매시장에서의 구입 등이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환수된 문화재는 일본, 미국, 뉴질랜드, 프랑스 4개국으로부터 찾은 3천514점이 전부다.
이 중 1996년 민관합동으로 환수운동을 벌여 우리나라에 돌아온 데라우치(寺內)문고 135점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우리 문화재들이 해외로 유출된 것일까. 정확한 통계조차 찾기 힘들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의 일본 현지조사 결과 현재까지 일본 내 박물관 등에서 확인된 한국 문화재는 약 3만4천여 점. 정부는 해외유출 우리 문화재를 20개국 7만4천여 점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민간 전문가들은 수장고에 방치된 문화재가 20여만 점, 개인소장 문화재 등을 고려하면 약 1백만 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문화관광부와 문화재청에 대한 국회 확인감사에서 열린우리당 윤원호 의원이 해외 반출된 우리의 약탈 문화재 중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있는 4만여점을 제외하고는 실태파악도 되어 있지 않다며 문화재환수국이나 약탈문화재조사국 등 전담기구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때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지적이다.
과거 약탈된 우리의 문화재들이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의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동안 '제2의 BNF 사건'이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최근 일본의 사찰에서 도난당한 후 국내로 반입돼 대구의 모 사찰에 보관돼 있다는 국보급 고려불화의 행로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우리 문화재들이 도난당하고 팔려 지하세계에 영영 감춰질지 모를 일이다.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약탈한 후 되돌려 준 예는 극히 드물다.
더욱이 외국의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문화재도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적인 조사와 지속적인 환수노력만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조금이나마 되찾고 보존하는 길이 아닐까. 徐琮澈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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