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입력 2004-11-02 09:50:06

낮게 되도록 낮게 엎드렸습니다

고개를 드는 순간,

그때마다

나의 웃자란 삶은 여지없이 잘렸습니다

이제 나지막이 기어가는,

숨 죽여 조금씩 뻗어 내리는,

삶의 길을 알았습니다

당신의 높이를

결코 넘보지 않습니다

그 높이 아래에서

나만의 푸른 삶을 열어갈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메마른 땅에서

낮게 엎드려

당신의 발바닥에 밟히면 밟힐수록

푸르게 뻗어내려

푸른 향기가 되려합니다잔디/곽분도

낮게와 낮게 사이에 끼어 있는 '되도록'의 위치가 절묘하다.

낮게 되도록으로 읽을 때와 되도록 낮게로 읽을 때, 그것은 각각 원망(願望)과 정도(程度) 표현이 된다.

시인이 바라는 삶의 길은 '낮게 되도록' 사는 것이며, '되도록 낮게' 살겠다는 겸양이 푸른 삶을 열어갈 수 있는 지혜라고 시인은 말한다.

살아가면서 그 뜻을 알게 된 바지만 안톤 슈낙의 일절: "출세한 여인의 좁은 어깨", 그 웃자란 뒷모습보다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게 또 있을까.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