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가을과 한국의 가을

입력 2004-11-01 11:52:33

가을이 익는 오늘은 시(詩)의 날.

시인 윤동주는 가을단풍을 이렇게 노래했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무가지 위에는 하늘이 펼쳐있다.

가만히 푸른 하늘을 들여다 보노라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올해 단풍은 비바람이 적어선지 꽤 오래 가는 것 같다.

예년 같으면 잎이 마르거나 낙엽이 두터워졌을 무렵인데 아직 산등성이마다 한창이다.

지난 주말에도 단풍놀이 행렬들이 오후 늦게까지 교외 도로를 가득 메웠다.

꼬리를 문 가을 행락 차들을 보면서 불경기로 먹고살기 힘들다고 한숨 쉬면서도 다들 '가을 타는' 소박한 낭만까지는 잃지 않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왠지 마음 한 구석엔 우리들의 가을이 윤동주의 시처럼 슬픈가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행락지 상가나 식당 분위기도, 파란 하늘을 시리게 쳐다봐도 눈썹이 파란물감으로 물들기 전에 눈물부터 먼저 고일 것만 같다.

토요휴무제가 확산되고 주말 행락이 늘어나면 3차산업을 통한 내수경제도 나아지려니 했었지만 다같이 토요휴무제를 하면서도 우리와는 딴세상인 이웃 중국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런 심정이 된다.

그들은 '휴일경제'란 용어까지 생겨날 만큼 토요휴무제와 내수 소비진작이 효과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민일보는 중국의 휴일 야외활동 산업이 몇년 내에 자동차 산업 규모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하는 정도다.

관광 소비가 늘어나면서 요식업과 교통분야에 10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노동절 연휴 단 7일 동안에만도 5조1천억원의 소비유발효과가 있었다고 국가통계국은 밝히고 있다. 국경절 연휴가 있는 10월 가을철 소비도 엄청났다. 상무부(商務部)의 조사로는 연휴기간중 재래시장'관광지 등에서 소비되는 지출이 지난해보다 23%나 증가했고, 백화점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내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내국 관광객 숫자도 토요휴무 연휴 바람을 타고 급증하고 있다. 토요휴무제 실시 직전인 1994년의 내국 관광객 숫자는 5억2천400만명(연인원)이었으나 2000년에는 7억4천400만명이었다.

올해는 줄잡아 10억명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놀면서 내수경제를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중국인들의 연중 휴일수는 엄청나다. 토요휴무까지 끼워서 이래저래 노는 날이 무려 130일이다.

이틀 일하고 하루 논다는 계산인데 그나마 주당 근무시간조차 토요휴무제 실시전 48시간이던 것을 40시간까지 줄여놓았다.

우리보다 더 적게 일하고 이틀 걸러 하루씩 놀아가면서도 경제성장율은 10% 안팎을 이끌어 가는 부러운 이웃을 쳐다보면서 지도층의 정치력이 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를 새삼 생각게 된다.

한달전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중화인민 공화국 건국 55주년 개념식때 강조했던 말은 "중국정부는 시종일관 '평화'와 '발전'과 '협력'이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였다.

독설과 오기에 의해 국회 파행을 초래하고 있는 우리쪽 총리의 말들은 '평화'나 '협력'과는 너무나 멀리 빗나가 있다.

문화혁명의 광신적 홍위병들이 철저히 과거를 파괴하고 깎아내리는 공자 죽이기로 국력을 쇠잔시켰지만 새로운 중국의 지도자들은 거꾸로 과거 살리기를 통해 미래로의 디딤돌을 놓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총리, 중국과학원, 원로 등이 중국문화의 상징적인 성(標志城)으로서 공자 탄생지인 곡부를 지정하고 거대한 성을 건설키로 한 것이다.

사생결단 과거사 캐내는 법 만드느라 국회가 게걸음을 걷게하는 우리쪽 지도층과는 미래지향적 사고와 역사관의 눈높이가 차이 나는 것이다.

잘 되는 집 장맛도 좋다듯이 잘 되는 나라 총리와 죽쑤는 나라의 총리는 말부터 격이 다르다고나 할까. 그런 차이는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르듯 서서히 한 국가의 경제에까지 보이지 않는 악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그것은 또한 다같은 토요휴무제를 하면서도 한쪽은 '휴일경제'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한쪽은 이판사판 스트레스 받는 판에 단풍놀이나 가자는 김밥부대만 늘어나게 하는 차이이기도 하다. 중국의 가을과 한국의 가을, 단풍은 다같이 고운데 저쪽 가을이 더 풍성해보이는 씁쓸함은 가을을 타서일까.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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