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훈장님-이름으로 배우는 한자

입력 2004-11-01 09:33:40

漢字 敎育을 始作하기 전에 흔히 "자신의 이름, 더 나아가 부모님의 이름을 漢字로 쓸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姓名. 요즘 들어 순우리말 이름을 많이 쓰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姓名의 대부분이 漢字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이름 3字, 부모님의 姓銜 6字만 알아도 漢字 9字를 아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家族 構成員의 이름, 선생님의 姓銜, 班 아이들의 이름까지 言及한다면 그들의 이름만 가지고도 수십, 수백 개의 漢字를 익힐 수가 있는 것이다.

姓名에 대해 알아보자.

姓氏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人類는 母系 社會를 거쳐 씨족·부족 등의 父系 社會로 바뀌었다

이러한 人類의 歷史가 우리의 姓氏에도 그대로 反映되었다.

姓이라는 글자는 '어미[女]가 낳았다[生]'는 의미로 원래는 어미의 성을 의미했다.

이후 씨족사회로 접어들면서 아비의 성을 따르게 된 境遇를 姓과 區別하여 氏라고 하게 되었고, 姓과 氏를 합쳐 姓氏라고 使用하고 있는 것이다.

中國의 姓氏는 官職이나 技術에 의해 붙여진 境遇, 해당 씨족이나 부족이 居住했던 地域의 地名에 根據한 境遇, 外地로부터 流入된 民族이 民族的 差異에 의해 붙여진 境遇 등으로 區分된다.

地名에 根據한 예로, 나라 鄭이나 성곽 郭씨 등 글자에 고을 읍[邑=?]이 들어간 境遇는 해당 씨족이 居住했던 地域이나 그 地域의 特性을 따서 붙여진 姓氏라고 볼 수 있다

職業이나 技術에 의해 붙여진 姓氏의 예로 祝, 巫, 卜씨 등을 들 수 있다.

祝, 巫, 卜씨의 境遇 祭祀를 主管했던 祭官이나 점을 치거나 운수를 예측했던 特定 階層 사람들의 姓氏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또, 사관 史는 장식된 붓을 손으로 쥐고 있는 모습을, 벼슬 尹은 손으로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을 그려 모두 歷史의 記錄을 主管하던 史官을 意味하며, 이러한 職責으로부터 굳어진 姓氏들이다.

우리나라에서 姓氏를 쓰기 시작한 것은 三國時代부터라고 한다.

박혁거세는 박에서 나왔으므로 朴씨의 始祖가 되었고, 金櫃에서 나온 김수로왕은 金씨의 始祖가 되었다.

석탈해는 까치[鵲:까치 작]가 보호해 주었다 하여 姓을 昔氏라 하였다고 한다.

姓名 가운데 그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을 특별히 尊重하여 남의 이름은 銜字라 하고, 姓名과 住所, 電話番號 등을 印刷한 종이쪽지를 名銜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임금의 이름자에 使用된 漢字는 民間에서 함부로 쓰지 못했다.

가령 朝鮮 太祖의 諱가 旦이어서 民間에서는 설날 즉 元旦을 元朝로 바꾸어 쓰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父母의 이름을 子女가 바로 부를 수 있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이 禮儀에 어긋난다 하여 使用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른의 이름을 얘기할 때는 姓을 除外하고 '字'를 붙인다.

즉 홍길동이라고 하면 홍, 길字, 동字라고 表現한다.

또한 웃어른이 姓氏를 물을 때는 ○○車氏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車哥라고 해야 한다.

氏와 哥는 둘 다 姓氏를 나타내는 表現이지만, 哥는 氏보다 自身을 낮추는 表現이다.

相對方에 대해서 말할 때는 "그 사람은 車氏 姓을 가졌다"고 하고, 나를 相對方에게 말할 때는 "저는 車哥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禮儀이다

姓氏 앞에는 慶州 金氏, 密陽 朴氏처럼 慶州나 密陽과 같은 本貫이 붙는다.

本貫이라는 것은 姓氏의 始祖가 태어난 땅이나 임금에 의해서 封해진 지역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우리 先祖들을 보면 이름 외에도 字號라고 하여 부르는 名稱이 따로 있었다.

예를 들어 이황 先生의 字는 景浩이고 號는 退溪이다.

이 외에도 몇 개의 字號가 더 있으며, 예전에 이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했다.

어렸을 때는 본이름을 부르지만 冠禮를 치르면서 字를 만들어 불렀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나 동년배들끼리 서로 부를 때 사용했다.

號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表現이다.

一般人들이 退溪, 栗谷, 茶山이라고 불러도 無禮가 되지 않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號이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 장원교육 한자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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