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이 있다.
붓글씨를 보는 방식이다.
글씨의 해독과 관계없이 시각적인 구성과 골격을 따진다.
이를테면 서예를 그림같이 자의적으로 읽는 것이다.
여름 남도에서 현판 글씨를 보며 눈의 흐름을 따라 간 적이 있다.
선암사, 추사가 늦은 나이에 쓴 현판 글씨도 물론이지만 기왓장에 써 놓은 많은 이름, 검은 기와에 흰 글씨를 보면 정겹기 그지없다.
정성들여 시주하듯 애쓴 글씨가 달필보다 몹시 후덕해 보인다.
차나무가 많았던 강진 만덕산 기슭의 유배지, 다산의 호가 유래되었다는 다산초당에는 추사의 글씨 몇 점을 볼 수 있다.
18년 유배 생활 중 10년을 지냈다는, 그리하여 검붉은 동백꽃 같은 사상을 피워 올렸다는 사실보다 글씨의 결구와 조형이 먼저 읽혀 온다.
바위에 '丁石'(정석)이라고 다산이 직접 쓴 해서체는 단아하다.
다산의 체취가 그대로 이식되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보는 추사글씨의 과도한(?) 조형미는 오랫동안 서예를 탐해 온 나로서 호들갑 떨지 않을 수 없게 한다.
'老阮'(노원)이라고 낙관한 선암사 내의 추사체가 그렇고 '茶山艸堂'(다산초당·집자한 글씨)과 정약용을 모시는 '寶丁山房'(보정산방)의 글씨 또한 그렇다.
보길도 윤선도의 정원 세연정, 현판을 찾았다.
그 흔한 현판이 없다.
정자에 올라 짧은 휴식을 보태며 '어부사시사'의 춘하추동을 새긴 바위 위의 글을 읽지만 뜻이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글씨의 유려한 흐름이나 획순을 따라 가는 게 고작이다.
일곱 살이던가, 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을 잡고 따라 나선 대처의 장터는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현란하고 다양했다.
그 많고 헤아릴 수 없는 좌판에서 붓글씨 쓰던 노인의 모습은 나를 잡아끌었다.
그날 곡물과 바꿔온 붓 한 자루를 품고 무엇을 해볼 것이란 상상력이 요동치던 밤에 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잠을 청한다는 게 어쩌면 가당찮은 일, 그때의 붓은 그림으로 바뀌어 글씨도 그림으로 보는 버릇이 생겼다.
권기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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